“코로나가 낳은 분노·낙인 찍기… 상호신뢰 바닥나는 한국”

입력 2020-10-29 04:02
코로나19로 인한 우울감을 뜻하는 ‘코로나 블루’에 이어 분노를 의미하는 ‘코로나 레드’, 절망을 나타내는 ‘코로나 블랙’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울분 전문가’ 유명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울분은 돌파구나 출구가 없는 절망 상태가 우울, 분노, 무기력과 만나는 것”이라며 코로나19로 고조된 분노가 혐오와 낙인으로 번지고, 사회의 신뢰를 잠식하는 것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최현규 기자

유명순(51)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울분 전문가’로 통한다. 독일 사리테대 마이클 린든 교수가 정립한 울분의 개념을 우리 사회에 접목해 ‘한국의 울분’ 연구를 꾸준히 해왔기 때문이다. 올해 들어서는 코로나19 발생 직후부터 총 18번의 코로나19 위험인식조사를 진행했다. 외국에서도 미국 여론조사업체 퓨리서치센터나 캐나다 몬트리올대 행동의학연구소 정도가 조사를 실시하고 있지만 이렇게 매달 자료를 쌓은 곳은 드물다.

지난 21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연구실에서 만난 유 교수에게 위험인식조사를 통해 나타난 코로나19와 한국인의 높은 분노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세계 주요 14개국 국민 가운데 한국인들이 코로나 걱정을 가장 많이 한다는 퓨리서치센터의 발표가 있었다. 가장 성공적인 방역을 하고 있는데도 우리가 불안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확진자 숫자가 줄어도 코로나를 보도하는 정보량은 줄지 않는다. 언론을 중심으로 코로나 상황에 주목하게 하는 소통방식이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국민들이 걱정을 하니까 방역 성과가 있다는 역인과의 논리도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리가 확진자를 어떻게 대하는지 돌아보면 왜 코로나를 걱정하는지 알 수 있다. 우리 조사에서 ‘감염이 두렵다’는 응답자가 71.2%인데, ‘확진됐을 때 받을 비난과 피해가 두렵다’는 응답이 66.0%로 낙인에 대한 두려움이 상당히 높게 나타난다. 감염이 되면 내 정보가 공개돼 왜 그곳에 갔으며 왜 그렇게 처신했느냐는 질타를 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큰 것이다.”

-18번의 위험인식조사에서 어떤 점들이 두드러졌나.

“몇 가지 흥미로운 경향성이 있었다. 퓨리서치센터 조사 결과처럼 우리 국민은 치명력에 비해 코로나19를 굉장히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감염되면 내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심각하게 생각한다는 게 제일 높아야 되는데 남에게 미치는 영향, 즉 민폐가 되는 것을 걱정하고 있다. 두 번째는 9개월이 지났지만 일상회복이 절반도 이뤄지지 않았다. 10월 조사에서 일상회복을 못했으면 0점, 일상을 완전히 회복했으면 100점으로 매겼을 때 평균 48.2점으로 나타났다. 직장과 임금 모두 보전이 된다고 응답한 사람은 두 명 중 한 명꼴이다. 그러니까 절반 가까운 나머지 사람들은 손실이 있고, 그 변화가 코로나 블루라는 우울감과 무기력으로 이어지게 된다.

세 번째로 행동에 있어서 마스크 쓰기, 손 씻기 같은 개인 예방수칙은 꽤 잘 이뤄지고 있지만 2m 거리두기, 외출 자제 같은 사회적 거리두기 실천율은 기대만큼 높아지지 않고 있다. 또 하나는 질병관리청을 비롯한 방역 당국과 정부에 보내는 국민들의 신뢰를 ‘수직 신뢰’, 주변의 보통 사람들에 대한 신뢰를 ‘수평 신뢰’라고 했을 때 수직 신뢰는 높지만 수평 신뢰는 낮다는 점이다. 문제를 일으키는 확진자나 일탈자가 소수인데도 그들을 주목하다 보니 주변에 대한 신뢰가 낮아지고, 나만 홀로 외롭게 코로나와 싸우고 있는 것 같은 분노와 스트레스가 치솟는 것이다.”

-코로나19에 대한 뉴스나 정보를 접했을 때 느끼는 감정 중 분노가 두 번째로 높다는 결과도 특징적이다.

“불안이 계속해서 가장 높지만 점차 줄어들고 있고, 공포감도 처음에는 높았다가 1월에 비해 절반 수준으로 낮아졌다. 그런데 분노는 쭉 상승한 데다 두 번의 피크가 있었다. 2월 신천지 사태, 8월 사랑제일교회와 광화문 집회, 이 두 번이 사람들의 분노감을 크게 올라가게 했다.”

-교수님은 울분 연구를 통해 우리는 국민 절반 가까이가 만성적인 울분을 느끼는 ‘울분 사회’라고 설명한 바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분노가 장기적인 울분으로 이어질까.

“코로나로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의 울분이 굉장히 높은 건 실직자 12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이미 확인했다. 위험인식조사에서는 취업 기회의 문이 닫혀버린 2030 취준생들의 울분이 높게 나타났다. 독박육아를 하게 된 주부들, 그리고 거리두기를 당해버린 사람들, 즉 차별받고 배제된 낙인의 대상들도 중요한 울분 연구의 대상이 될 거라 생각한다.”

-올해 울분 조사 결과는 어땠나.

“울분 정도가 여전히 높았다. 응답자의 11.9%가 중증 울분으로 나타났고, 만성적이거나 장기적으로 울분감이 쌓여 있는 것까지 포함하면 47.3%가 울분 상태였다. 중증 울분만 비교하면 2018년 조사에서는 14.7%, 2017년에는 13.3%였다. 중증 울분으로 분류된 독일인이 2.5%인 걸 감안하면 모든 조사에서 심한 울분을 느끼는 한국인의 비율이 독일의 5배 안팎으로 높은 셈이다.”

-설문으로 돌아가서, 국민들의 정부와 방역 당국을 향한 수직 신뢰는 여전히 높지만 주변 사람에 대한 수평 신뢰가 불균형을 이루고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가 방역 당국에 보내는 지속적인 높은 신뢰가 방역 성과에 큰 기여를 했다. 우려되는 건 위기가 장기화될수록 수평 신뢰, 즉 언론과 주변에 대한 신뢰가 중요한데 이 부문의 신뢰가 낮다는 점이다. 방역 당국을 제외하면 나와 내 가족보다 방역 성과에 더 기여하고 방역에 더 중요한 집단은 없다고 여긴다. 한국사회가 코로나로부터 안전하지 않다고 느끼고, 코로나를 통제할 수 없다고 느끼는 비율이 꾸준히 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주변 사람을 믿지 못하고 언론을 신뢰하지 못한다면 수직 신뢰만으로 방역 성과를 유지하기 힘들다.”

-‘코로나19로 도전받고 있는 가치’를 묻는 질문에 사회안전, 경제성장, 건강과 웰빙에 이어 상호신뢰가 네 번째로 꼽혔다. 신뢰와 더불어 그 아래 순위에 있는 포용, 민주주의, 통합도 함께 얘기할 때가 되지 않았나.

“크리스텐슨이라는 노르웨이 학자는 위기관리를 잘하는 국가는 공공부문이 힘이 있고, 정부가 투명하며, 사회적 신뢰가 형성된 나라들이라고 했다. 갈등을 품어줄 수 있는 게 신뢰다. 그런데 국민들의 분노가 높아지면서 신뢰가 고갈됐던 게 드러나고 더 심해졌다고 본다. 1차 조사에서부터 ‘코로나 대응을 위해 어떤 정책이 바뀌었으면 좋겠습니까’라고 물으면 대답은 처벌 강화해라, 엄단해라, 계속 그렇게 나온다. 못 믿을 사람들에 대처하는 방법은 엄벌밖에 없는 거다. 신뢰가 회복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분노와 혐오는 부메랑이 된다.”

-코로나19로 긴급히 도움받을 사람을 묻는 질문에 ‘가족 빼고 1, 2명’이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고, 그다음이 ‘아무도 없다’인 것에서도 신뢰가 무너진 각자도생 사회의 면모를 봤다.

“사회적 지지의 빈약함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코로나로 새로 불거진 문제도 있겠지만, 한국사회가 늘 갖고 있던 문제가 코로나 때문에 드러나는 게 더 많은 것 같다.”

-혐오 표현 대상 1순위가 ‘중국(인)’ ‘신천지’ ‘자가격리 수칙 위반자’에서 ‘거리두기 미실천자’로 바뀌었다는 점도 눈에 띄었다.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 혐오의 대상이 됐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처럼 되는 상황은 우리에게 가장 큰 도전이 될 거다. 하버드대 피터 홀 교수는 성공적인 사회일수록 부정적 이미지에 대한 ‘탈(脫)낙인’을 위해 노력하고, 신뢰를 높이려는 다양한 소통 정책을 쓴다고 했다. 상호신뢰를 고갈시키지 않는 지속가능한 방역 전략은 이런 데서 아이디어를 찾을 수 있다. 우리가 지향하는 건 감염자 규모 줄이기뿐만 아니라 이 위기를 딛고 성공사회가 되는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확진자’라는 용어에 대한 문제의식이 새로웠다. ‘확진자라는 새로운 이름’이라고 표현했는데, 확진자라는 말도 낙인과 차별의 언어가 된다는 것인가.

“영어로는 ‘confirmed case’라고 하지만 우리는 확진자라는 용어를 이전에 쓴 적이 없다. 환자는 의료체계 안에 들어오면서 치료와 돌봄의 대상이자 온정주의적인 대상이 된다. 그런데 확진자라는 이름은 ‘너 왜 감염됐어?’ 일단 책임의 무게가 더 큰 거다. 확진자들에게 앞으로 어떤 부분이 개선됐으면 좋겠느냐고 물었더니 첫째가 환자 인권이었다. 환자로 대해 달라는 것이다.”

-구별 짓고 차별하는 방식보다 포용과 연대를 강화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에 공감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상주의적인 제언이라는 생각도 든다.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보자. 코로나 초기의 ‘착한 임대인’운동이나 광주시민들이 대구 의료진에게 도시락을 보내준 일은 연대와 지지의 예다. 신뢰는 상대방에 대한 부정적인 낙인을 거두고 그 사람이 당면한 문제가 개인의 능력이나 책임의 문제로 치부되지 않도록 하는 뒷받침이다. 후자는 제도와 정책으로 해결해야 하고, 전자는 사회 통합적인 소통으로 풀어야 한다.”

권혜숙 인터뷰전문기자 hskw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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