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철호(사진) 전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은 “2018년 당시 전속고발권 폐지 문제는 청와대 경제수석실이 배제된 채 조국 민정수석 라인이 주도했다”면서 “경제 문제인데 경제라인이 배제된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8월 퇴임한 지 전 부위원장은 “전속고발권이 이대로 폐지되면 검찰이 (기업) 잡아서 족치겠다는 것밖에 안된다”고 말했다. 지난 27일 정부세종청사 부근에서 만난 지 전 부위원장은 작심한 듯 전속고발권 폐지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전속고발권은 불공정 사건의 경우 공정위가 고발해야만 검찰이 수사와 기소를 할 수 있는 제도다. 문재인정부는 공정위의 솜방망이 처벌 등을 문제삼아 전속고발권 폐지를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고, 현재 이를 담은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국회에 상정된 상태다.
지 전 부위원장은 2018년 당시 상황에 대해 ”검찰과 1차 합의를 이뤘고 입찰담합 등 4개 담합 사건에 대해 전속고발권을 폐지하는 내용으로 홍장표 경제수석에게 보고까지 했다. 그런데 검찰이 말을 바꿨다”고 했다. 검찰이 돌연 리니언시(담합 자진신고 감경제도) 정보를 동시에 보자고 제안했고, 이에 공정위는 별건수사 등 우려로 난색을 표했다. 지 전 부위원장은 “그로부터 며칠 후 (검찰이) 쳐들어왔다”고 말했다. 검찰은 그해 6월 지 전 부위원장에 대해 부위원장 임명 전 중소기업중앙회 감사직을 수행한 것은 불법 취업이라고 조사, 기소했다. 지 전 부위원장은 검찰 조사가 시작되면서 직무배제 조치 당했고 이듬해 2월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는 당시 상황에 대해 “직무정지로 배제되고 난 뒤 청와대 경제수석실도 전속고발권 폐지에 관여하지 않았다. ‘조국(민정수석)-박형철(반부패비서관) 라인’이 사안을 챙겼다”고 말했다. 당시 민정수석실의 입장은 공정위가 부패해 검찰에 권한을 넘겨줘야 한다는 논리와, 검경 수사권 조정 과정에서 검찰이 섭섭한 게 있으니 담합 조사 권한이라도 주자는 논리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경제적 사안인데 정치적 판단을 해 절차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지 전 부위원장은 전속고발권 폐지는 국회에서 보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검찰은 리니언시 정보를 토대로 기업에 대해 압수수색영장을 받아 싹 털어갈 것”이라고 우려했다. 검찰이 전속고발권 폐지 근거로 들고 있는 미국 사례에 대해서는 “미 법무부에는 경제분석 박사만 40~50명이 된다. 우리는 검사들이 1~2년마다 바뀐다. 전문가가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담합 조사를 하려면 경제 분석이 전제돼야 하는데 지금까지는 공정위가 다 해줬다. 검찰이 직접 하면 시장획정조차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검찰과 협조가 잘 될 것이라는 공정위 논리에 대해 지 전 부위원장은 “검찰은 공정위를 동등한 협상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자기들보다 몇 단계 아래 기관으로 본다. 협의가 제대로 이뤄질 수 없는 구조”라고 꼬집었다.
지 전 부위원장은 대안으로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가격담합 등 대부분의 담합 사건에 대해 전속고발권을 폐지하는 것으로 돼 있는데 일단은 입찰담합으로만 한정해야 한다. 입찰에만 한정된 입찰담합은 별건수사 우려가 그나마 적다”고 설명했다.
세종= 글·사진 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