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게 맞아떨어졌다, 완벽한 해피엔딩을 위해…”

입력 2020-10-29 04:07
은퇴 경기를 앞둔 전북 현대의 이동국이 28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으로 소회를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마지막 경기에서 우승컵 들고 은퇴하는 선수가 몇이나 있겠어요. 그게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것 아닐까 해요.”

기자회견장에 앉은 이동국(41)은 “모든 게 마치 짜여진 듯 들어맞았다”고 말했다. 가장 큰 애정을 품은 소속팀이 자신의 마지막 경기에서 우승 여부를 결정하게 된 것, 시즌 도중 입었던 부상과 그로 인한 생각의 변화, 은퇴 결심까지 모두가 때를 만난 듯 맞아떨어졌다고 했다. 지금 물러나는 게 가장 완벽한 ‘해피엔딩’이라는 이야기다.

23년간 K리그와 국가대표팀을 오가며 한국 축구를 대표해온 스트라이커 이동국이 은퇴를 맞았다. 이동국은 28일 소속팀 전북 현대의 홈구장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은퇴 기자회견을 열고 소회를 밝혔다. 그는 다음달 1일 전북의 8번째 리그 우승이 걸린 대구 FC와의 경기를 끝으로 축구화를 벗는다. 은퇴 뒤 계획을 묻는 질문에는 “아직 생각해보지 않았다”고 답했다.

이동국이 은퇴를 결심한 계기는 최근의 무릎 부상 경험이었다. 그는 “부상 때문에 은퇴하는 건 아니다. 지금은 몸상태가 아주 좋다”고 입을 뗀 뒤 “다만 장기 부상을 입은 뒤 긍정적이던 예전과 달리 조급해하는 스스로를 보며 많은 생각을 했다. 몸이 아픈 건 괜찮지만 정신이 나약해지는 건 참을 수가 없었다”고 덧붙였다.

앞서 이동국은 전북이 우승경쟁팀 울산 현대를 이긴 다음날인 지난 26일 인스타그램 계정에 글과 육성 메시지로 은퇴 결심을 밝혔다. 그는 기자회견장에서 “사실 울산 경기 전에 구단 대표와 단장 코치 감독에게 은퇴 결정을 이야기했다”면서 “중요 경기였던 울산전에서 좋은 결과가 나온 뒤 얘기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고 설명했다.

이동국은 오랜 선수생활에서 기뻤던 추억들을 생생하게 기억했다. 그는 “(데뷔팀) 포항 스틸러스에서 프로 선수복을 처음 받았을 때가 기억난다”며 “아직 등록이 안된 33번 선수복을 구단이 고등학생인 내 이름을 새겨 특별 제작해 선물로 줬다. 며칠 동안 옷을 벗지도 않고 그대로 입은 채 잤다”면서 웃었다. 축구 인생에서 가장 화려한 순간으로는 전북에서 첫 우승컵을 들었던 때를, 가장 기억나는 골로는 대표팀에서 당대 최고의 골키퍼인 독일의 올리버 칸을 상대로 넣은 발리골을 짚었다.

그는 “은퇴 결심을 하고 돌아보니 정말 기록이 많더라”면서 “오늘 아침에 제가 800경기를 넘게 뛰었다는 걸 처음 알았다”고 말했다. 이동국이 1998년 데뷔 이래 각급 대표팀과 소속팀에서 뛴 공식 경기는 총 844경기로 역대 최다다. 그는 “1~2년 잘해서는 나올 수 없는 기록이라 생각한다”면서 “후배들도 경신하기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회견 내내 담담한 표정이던 이동국은 가족의 반응을 묻는 질문에 끝내 눈물을 보였다. 그는 “어제 늦게까지 부모님과 이야기를 했다”면서 “아버님이 나도 이제 은퇴를 해야겠다고 하셨다. 축구를 시작할 때부터 30년 넘게 뒷바라지 해주신 분”이라며 눈물을 참으려 말을 멈췄다. 그는 “그동안 고생하셨고 은퇴하셔도 된다고 말씀드렸다”면서 손수건으로 눈가를 닦았다.

회견을 마치고 이동국은 “사진 한 번 찍어도 되느냐”고 물은 뒤 기자단을 배경으로 ‘셀카’를 찍었다. 그는 “사진을 찍히기만 하다가 이렇게 많은 분들과 사진 찍어보기는 처음”이라며 웃은 뒤 “지금까지 축구를 열심히 했기에 많은 분들이 마지막 인터뷰에 와줬다고 생각한다”며 “제2의 삶도 기대해달라”고 부탁했다.

전주=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