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 속에서 토해낸 소중한 생의 조각이 그녀의 시입니다. 시는 그녀의 생명이었습니다.”
시인 고훈(안산제일교회 원로) 목사가 최근 한 유고시집의 추천사에 남긴 말이다. 시집의 저자는 고 장유진 시인. 고 목사는 영국의 문학가 수 프리도가 남긴 ‘천재는 단명한다’는 말을 빌려 “장유진은 12세의 나이로 한국 문단에 나와 1만여편의 시를 자기 생명으로 쓰고 23세에 주님의 부름을 받은 천재 시인”이라고 소개했다.
2018년 5월 세상을 떠난 장유진의 삶은 절박함과 소명으로 점철된다. 그는 7세에 얻은 희귀병(뇌동정맥기형) 때문에 16년간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오늘’을 살았다. 17차례 뇌수술을 받으며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가고, 생존을 위한 채비로 하루를 시작해야 하는 그를 지탱해 준 힘은 시였다.
장유진은 첫 수술 후 유일하게 움직일 수 있는 오른손을 들어 ‘별들이 밤에는 땅으로 내려와 술래잡기를 한다’는 내용의 시를 썼다. 이를 시작으로 64권의 스프링노트에 1만여편의 시를 남겼다. 그렇게 쓰인 시들은 ‘꿈이 이루어지는 세상’(2004) ‘내 꽃은 항상 웃고 있습니다’(2005) ‘좋아요 좋아요 나는’(2016) 등 5권의 시집으로 출간됐다.
어머니 이성자(56) 안산제일교회 집사는 26일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병상에 누워 하루에 ‘모나미 볼펜’ 한 자루를 다 써가며 시를 쓰느라 손가락 변형까지 왔지만, 유진이는 시 쓰기를 멈추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시가 고된 일상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피로회복제가 돼 미소를 줄 수 있길 바랐다”고 덧붙였다.
지난달 출간된 장유진의 여섯 번째 시집 ‘너의 꽃잎은 새들의 날개보다 아름다워’(밀알)엔 스프링노트에서 잠자고 있던 작품 중 170편을 담았다. 첫 번째 시집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출판을 기획해 온 김용한 용인강남학교 교장은 “시인 장유진은 힘겨운 상황에 놓인 사람들에게 소망의 씨앗을 뿌리고 희망을 노래하는 사람이었다. 시를 쓰는 그의 가슴엔 소명의식이 가득했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좌절하고 생을 포기하려는 장애인들에게 용기를 주는 시들이 기억에 남는다”며 “이 땅에서 시름하는 이들을 위로하게 하신 하나님의 계획이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딸을 천국에 보낸 뒤 하루도 빠짐없이 하늘을 향해 편지를 쓰고 있다는 이 집사는 “장유진의 시집이 희망을 향해 날갯짓을 시작하도록 돕는 귀한 도구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