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십년간 부양의무는 저버린 채 자녀가 남긴 재산만 상속받으려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자녀의 성장과 재산 형성에 전혀 기여한 바 없는데 단지 생물학적 부모라는 이유만으로 스스로 부모이기를 포기한 자들에게까지 상속권을 인정하는 현행 제도가 옳은지 사회적 합의를 이룰 때가 됐다.
최근 20대 후반의 딸이 숨지자 28년 만에 나타난 생모가 억대 보험금과 유산을 받아 간 사례가 있었다. 생모는 그것으론 부족했는지 딸을 간병하고 돌본 계모와 이복동생을 상대로 부당이득금 반환 청구 소송을 냈다. 계모와 이복동생이 딸의 신용카드 등으로 병원비와 장례비를 치렀다는 이유에서다. 생모는 딸 출산 후 1년 남짓 제외하곤 연락조차 없이 지냈다고 한다. 가수 구하라씨가 숨지자 오랫동안 연을 끊고 지내던 구씨 어머니가 재산을 상속받은 경우와 판박이다. 얼마 전엔 소방관 딸이 순직하자 32년 만에 나타난 생모가 유족급여와 퇴직금 등을 받아 챙겼다. 평생 외면하다 자녀가 남긴 재산이 탐나 부모 권리를 내세우는 것으로, 파렴치의 극치라 할 만하다.
상속은 민법상 피상속인의 직계비속, 피상속인의 직계존속, 피상속인의 형제·자매, 4촌 이내의 방계혈족 등의 순으로 이뤄진다(배우자는 별도 규정). 이 규정에 따라 민법 제1004조에 규정된 상속인의 결격사유에 해당하지 않는 한 혼인하지 않은 자녀가 사망할 경우 자녀의 재산이 부모에게 상속된다. 천륜을 저버린 부모의 자녀 재산 상속은 시대착오적이다. 사회 정의의 관점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제2의 구하라 사태를 막기 위해 양육 의무를 소홀히 한 부모의 상속권을 제한하는 이른바 ‘구하라법(민법 개정안)’이 20대 국회에 제출됐었으나 임기 종료와 함께 자동 폐기된 바 있다. 구라하법은 21대 국회에도 제출됐다. 필요성이 인정됐다는 의미로 마냥 국회 의안과에 묵혀둘 사안이 아니다.
[사설] ‘구하라법’ 사회적 합의 이룰 때 됐다
입력 2020-10-27 0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