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투자와 투기 사이

입력 2020-10-27 04:04

경제학을 전공한다는 이유로 친지들이 지금이 집을 사야 할 타이밍인지, 어느 주식을 사야 하는지 조언을 구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모른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니 실력 없는 경제학자라는 인상을 줄 것 같고, 아는 척하고 조언을 드리자니 나중에 원망 들을 것이 걱정되기도 한다. 결국 “제가 연구하는 경제학은 이런이런 것을 분석하는 것이고, 집값이나 주가 등의 예측은 그 범위에 있지 않습니다”라고 설명을 드리면 수화기 한편에서는 괜한 시간낭비했다는 아쉬움이 느껴진다.

나 자신을 변명하기 위해 애먼 경제학자들을 끌어들이는 것 같기도 하지만, ‘의사가 제 병 못 고친다’는 속담처럼 경제학자들치고 재테크에서 재미를 봤다는 사람은 흔치 않다. “경제학자 중에 좋은 동네에 내 집 마련을 실현한 경우는 원래 부자이거나 가정에서 본인의 의사결정권이 없는 경우뿐”이라는 한 선배 교수의 우스갯소리에 크게 공감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지나치게 합리적 사고를 중시하는 경제학자들의 성향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택이든 주식이든 건전한 투자는 투자 대상의 내재적 가치에 기초해 이뤄진다. 모든 시장 참가자들이 합리적인 사고를 한다고 생각하면 남들보다 높은 투자수익을 기대하기 어렵다. 많은 경제학자들이 재테크에 숙맥인 이유다. 그러나 다수 시장 참가자들은 좋게 말하자면 보다 진취적(?)인 사고를 통해 남들보다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굳건한 믿음을 갖고 있다. 적절한 시기에 치고 빠지면 시세차익을 실현할 수 있다. 여기서 내재적 가치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일단 남들도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보다 더 진취적인 참가자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막차만 안 타면 된다. 그렇게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합법적인 투기꾼이 돼간다.

치열한 연구를 통해 종목을 택하고 매수 타이밍을 정하는 내공 있는 투자자들을 투기꾼이라 매도할 생각은 없다. 자본주의의 꽃이라 불리는 주식시장을 합법적 투기장이라 칭하는 데 불편한 분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많은 참가자들이 주가가 오를 것만을 믿고 시세차익 실현을 위해 투자를 늘리는 현상이 지속될수록 건실한 투자자들의 뜻과는 다르게, 그리고 주식시장 본연의 역할과는 다르게 점차 투기장으로 변모하게 되는 것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최근의 주가 상승폭이 심상치 않다. 코로나19 여파로 실물경제는 유례없는 위기를 맞고 있는 반면 국내외 각종 주가지수는 사상 최고치에 근접해 있다. 분석가들은 여러 근거를 들며 주가 상승을 정당화하는 데 여념이 없지만 굳이 복잡한 분석을 하지 않아도 ‘주가가 계속 오를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에 기초한 투기로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런 믿음이 깨지는 순간 거품은 터지고 주가는 폭락하게 된다. 모두가 즐거운 잔치에서 찬물을 끼얹는 진상을 부리는 것 같아 망설여지기도 하지만, 주식시장의 거품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자주 나올수록 거품이 커지는 것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게 된다. 거품이 터질 때 투자자들의 손실이야 본인이 감수할 문제겠지만, 그로 인해 촉발될 경제 위기 피해는 모두가 짊어지게 되기 때문이다.

지금의 거품이 언제 터지게 될지 예측하기는 어렵다. 어쩌면 거품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다만 지난 수백 년 동안 자본시장에서 반복된 투기-거품-붕괴 과정을 연구한 경제사학자들이 공통적으로 내린 결론에 의하면 투자 활동에 회의적이고 문외한인 사람들마저 투기 유혹에 빠져 시장에 참여하기 시작할 때가 바로 거품 붕괴의 전조라고 한다. 그간 실망스럽게 전화를 끊었던 지인들에게 한 가지 확실한 조언을 드리자면, 혹시 제가 주식 투자를 시작했다는 소식이 들리면 그때는 꼭 파셔야 합니다!

안재빈 (서울대 교수·국제대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