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지혜 특파원의 여기는 베이징] 오늘부터 5중전회… 자립·쌍순환·習체제 강화 ‘키워드’

입력 2020-10-26 04:03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리커창 총리 등이 지난 23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항미원조(한국전쟁의 중국식 표현) 70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기립하고 있다. 시 주석은 이날 “어떤 세력도 조국의 영토를 침범하고 분열시키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라고 연설했다. 중국 최고 지도자가 한국전쟁 참전 기념식에서 직접 연설을 한 것은 2000년 장쩌민 주석 이후 처음으로 최근 고조되는 미·중 갈등 국면에서 미국에 강력한 경고를 보낸 것으로 해석된다. 로이터연합뉴스

‘항미원조’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는 중국에서 이번 주 시진핑 국가주석과 당 지도부가 총출동하는 회의가 열린다. 26일 베이징에서 개막하는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19기 5차 전체회의(19기 5중전회)다. 중국 공산당은 1년에 한 번 최고권력기구인 중앙위 전체회의를 열어 국가 중요 의제를 논의하고 결정한다.

미국 대선 직전 열리는 올해 5중전회의 키워드는 ‘자립’이 될 전망이다. 중국은 이번 회의에서 2025년까지 향후 5년간 적용될 14차 5개년 경제개발계획(14·5계획)을 사실상 확정한다. 또 시 주석의 장기집권 가속화 방안도 논의될 전망이다. 중국은 누가 미국 대통령이 되든 반중 기조는 유지될 것이란 판단하에 대내외 전략을 가다듬고 있다.

‘쌍순환’과 ‘시진핑 체제’ 강화 주목

중국 관영 매체들은 25일 5중전회 개막을 하루 앞두고 분위기 띄우기에 나섰다. 신화통신은 2016~2020년 13차 5개년 경제개발계획(13·5계획)을 통해 “중국 경제 총량이 100조 위안에 육박하고 1인당 GDP가 1만 달러를 돌파했다”고 보도했다. 이어 “중국은 코로나19와의 투쟁에서 중대한 전략적 성과를 냈고 탈빈곤 전쟁에서도 승리를 거뒀다”며 “중국은 전면적인 ‘샤오캉’(비교적 잘사는 중산층 사회) 시대로 나아가 목표를 달성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시 주석이 5년 전 18기 5중전회 때 약속한 것이 모두 실현됐다는 자평이다. 2002년 장쩌민 전 국가주석이 “2020년까지 전면적인 샤오캉 사회를 달성하겠다”고 언급한 이후 샤오캉 사회는 중국 발전의 상징이 됐다.


시 주석은 2016~2020년 5년간 경제성장률의 마지노선으로 6.5%를 제시했었다. 중국 당국 발표대로라면 코로나19 확산 전인 2019년까지 중국의 분기별 경제성장률은 6.0% 아래로 떨어진 적이 없다. 올해 1분기 -6.8%로 떨어졌던 경제성장률은 2분기부터 반등해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회복한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에도 향후 5년간 성장률 목표치가 제시될지는 불분명하다. 중국 내부에선 목표치가 있어야 한다는 주장과 경제 구조 변화에 맞춰 양적 발전이 아닌 질적 성장에 주력해야 한다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고 한다.

14·5계획에는 ‘쌍순환’의 구체적인 방향과 내용도 담길 전망이다. 쌍순환은 시 주석이 지난 5월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에서 처음 언급한 뒤로 핵심 키워드로 떠올랐다. 대외적으로 개혁·개방 정책을 지속하되 내수 경제를 키워 외부 의존도를 줄이자는 전략이다. 내수 확대는 중국이 이미 10년 전부터 표방해온 기조지만 이번에는 미국의 전방위 압박이라는 시급성이 더해졌다. 미 정부는 국가 안보 침해 우려 등을 이유로 중국 기업에 대한 제재 강도를 높이고 있다. 중국의 통신장비 업체 화웨이가 공개한 올해 1~9월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9.9% 늘어나는 데 그쳤다. 상반기 매출 증가율(13.1%)에 비해 성장세가 둔화된 것이다. 화웨이는 미 정부 제재로 구글 안드로이드 운영 체제를 사용할 수 없다. 여기에 지난달 추가된 제재 조치로 첨단 반도체 조달이 어려워져 스마트폰 사업이 위기에 처했다. 중국은 이처럼 자국 기업이 미국 입김에 휘둘리지 않도록 첨단 기술 분야 연구·개발(R&D)에 투자를 늘릴 방침이다.

이번 5중전회에선 2035년까지의 장기적인 경제 목표 설정도 논의된다. 2035년은 시 주석이 사회주의 현대화를 약속한 목표 시한이다. 당 중앙위는 최근 “공산당의 장기 집권을 위해 시 주석을 핵심으로 하는 당 지도 체제를 견지하고 보완한다”는 조례를 발표했다. 이 조례는 5중전회에서 추인될 가능성이 높다.

식지 않는 애국주의 열풍

요즘 중국에선 어딜 가든 애국주의를 자극하는 콘텐츠가 넘쳐난다. 중국 중앙(CC)TV는 최근 6·25 참전 정당성을 강조하는 ‘항미원조 국가수호’ 제목의 20부작 다큐멘터리를 매일 저녁 황금시간대 방영했다. 지난 23일 개봉한 전쟁 영화 ‘금강천’은 이틀 만에 400억원 넘는 수익을 올렸다고 현지 매체가 전했다. 중국은 중국군이 압록강을 넘어 첫 승리를 거둔 1950년 10월 25일을 항미원조 기념일로 삼고 있다.

시 주석은 지난 23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항미원조 70주년 기념대회 연설에서 “국가 주권과 안보, 발전이익이 훼손되는 것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며 어떤 세력도 조국의 영토를 침범하고 분열시키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이런 엄중한 상황이 발생하면 중국 인민은 반드시 정면에서 통렬하게 공격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경제, 외교, 군사 등 전방위 분야에서 갈등을 빚고 있는 미국에 대한 분명한 경고 메시지다.

이런 가운데 미 정부의 대중 압박 정책을 주도하는 인물 중 한 명인 매슈 포틴저 백악관 국가안보 부보좌관이 지난 23일 영국 런던 소재 싱크탱크가 주최한 화상회의에서 중국 체제를 맹비난하는 연설을 중국어로 했다고 글로벌타임스가 전했다. 포틴저 부보좌관은 중국학 전공자이면서 과거 미국 언론의 베이징특파원으로 활동한 경력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19 중국 책임론을 제기하며 꺼낸 ‘우한 바이러스’ 표현을 먼저 제안했을 만큼 반중 정서가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리하이둥 중국 외교학원 교수는 기고문에서 “서구 사람들은 포틴저의 유창한 중국어 연설을 듣고 그가 중국 문제의 권위자라고 믿게 될 것”이라며 “포틴저의 행보는 선거를 앞둔 트럼프 행정부가 여전히 중국에 대한 혐오를 부추기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권지혜 베이징 특파원 jhk@kmib.co.kr

[권지혜 특파원의 여기는 베이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