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봉구에 사는 직장인 김모(27·여)씨는 오전 6시30분 눈을 뜨면 문 앞에 쌓여 있는 새벽배송 박스를 들여 오는 게 일상이었다. 6개월째 이틀에 한 번꼴로 이 일을 반복했다. 퇴근 후 지친 몸을 이끌고 장을 볼 일도 없어졌다. 하지만 김씨는 택배기사 사망 뉴스를 본 뒤 이 편리함을 당분간 포기하기로 다짐했다. 김씨는 지난주부터 마트를 들러 귀가하고 있다.
김씨는 25일 “나의 편안한 생활이 누군가의 불편함을 딛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이분들의 처우가 나아질 때까지는 조금 참아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택배노동자들이 잇따라 숨지면서 시민사회에서는 ‘총알배송 불매’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소비자가 누려온 편익 뒤에 가려진 희생에 각성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인터넷상에는 ‘익일배송 그만한다’ ‘택배를 시킬 때마다 죄책감이 든다’는 글이 이어진다.
서울 중구에서 혼자 사는 박모(30)씨는 빗물에 흠뻑 젖은 박스가 이른 아침 문 앞에 놓여 있던 날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박씨는 지난달 3주간 재택근무하며 도시락 정기배송을 이용했다. 그는 이 기간 한 발자국도 집 밖에 나가지 않았다. 그런데 택배기사는 매일 아침 물품을 두고 갔다. 폭우가 오는 날에도 마찬가지였다.
박씨는 “아침에 다 젖은 택배 박스를 발견하고 안쓰럽고 죄송했다”고 회상했다.
다만 소비자가 아예 모든 배송 서비스를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서울 은평구에 사는 박모(26·여)씨는 “택배 자체의 문제보다는 52시간 보장, 인력 확대 등 열악한 환경을 바꾸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소비자 양심에만 떠맡기는 것이 해답은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서울 강남구에 사는 이모(27·여)씨는 “더 많은 소비로 일자리를 유지하고, 기업은 벌어들인 돈으로 노동자 처우를 개선한다면 모두가 이익을 공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보현 기자 bob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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