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검찰총장이 “어떤 압력이 있더라도 제 소임은 다해야 한다”며 임기를 마치겠다는 의지를 거듭 밝혔다. 특히 총선 이후 여당의 사퇴 압박 속에서도 문재인 대통령이 ‘메신저’를 통해 흔들리지 말고 임기를 마치라고 주문했다고 밝혀 적잖은 파장이 예상된다.
윤 총장은 22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임면권자(문재인 대통령)께서 아직 말씀이 없었고, 임기라는 건 취임 때 국민과 한 약속”이라며 “어떤 압력이 있더라도 제가 할 소임은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식물 총장’이라는 표현도 나온다”는 윤한홍 국민의힘 의원의 말에 대한 답변이었다. 윤 총장은 지난 1월부터의 검찰 인사 결과 대검에 ‘고립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총장에게 이뤄져야 할 보고가 제때 되지 않는다는 말도 자주 나왔다.
윤 의원이 “대통령의 ‘살아 있는 권력도 엄정하게 수사하라’는 말씀을 기억하느냐”고 묻자 윤 총장은 “그때뿐만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같은 생각이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윤 총장은 그러면서도 정권 수사 이력이 검찰 인사 불이익으로 이어져온 관행에 대해 비교적 솔직한 마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불이익이) 너무 제도화되면 ‘힘 있는 사람’ 수사에 누구도 나서지 않을 가능성이 많다”고 했다.
민주당은 4·15 총선 압승 이후 조국·추미애 전·현 법무부 장관 수사를 계기로 윤 총장 사퇴 목소리를 높여왔다. 그런데 윤 총장이 이날 ‘대통령 메시지’를 공개적으로 밝히면서 민주당과 대통령 지지층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윤 총장의 말이 사실이라면 대통령 생각에 반해 당이 윤 총장을 공격해온 셈이 되기 때문이다.
윤 총장이 말한 메신저로는 대통령 비서실과 민정수석실이 거론된다. 업무상 법무부·검찰과 밀접히 연관돼있는 만큼 가장 공신력 있는 채널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그런 말을 전달했다는) 사실 관계를 일일이 다 확인하긴 어렵다”며 “본인(윤 총장)이 그렇다니 그런 것 아니겠느냐”며 말을 아꼈다.
일각에선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 등 대통령과 가까운 외곽 인사들도 거론되고 있지만 가능성이 크진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 한 여권 인사는 “양 전 원장 등 외곽 라인을 동원해 윤 총장을 만나게 하는 것은 굉장한 리스크를 짊어지는 것”이라며 “비서실장이나 국정상황실장, 민정·정무수석 등 공식 라인을 통하지 않았겠느냐”고 했다.
윤 총장이 상황을 오독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한 친문 인사는 “여당이 총선에서 압승한 이후에 대통령이 사람을 별도로 보내 ‘임기를 마치라’고 주문했다는 건 그동안 대통령의 국정 운영스타일과 전혀 맞지 않는다”며 “윤 총장이 정부 인사들과 만났을 때 그들이 덕담 차원에서 건넨 얘기를 오독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윤 총장의 거취 문제를 놓고 검찰 내에서도 다양한 의견이 있다. 다만 윤 총장 개인이 영웅이라서라기보다 ‘검찰 흔들기’를 막기 위해 총장이 버텨줄 때라는 여론이 많다고 한다. 지난 21일에는 정희도 청주지검 형사1부장이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에 ‘총장님을 응원합니다’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강준구 이경원 기자 eye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