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맹점주 “아모레퍼시픽 상생협약 믿을 수 없다”

입력 2020-10-23 04:07

“잘나가는 제품은 ‘온라인 전용상품’이라고 가맹점에서 못 팔게 합니다. 손님이 물건을 찾아도 줄 수 없어요. 툭하면 본사가 내용증명 보내고 재고가 3억원어치 쌓여도 1000만원에 가져갑니다. 그러면서 무슨 상생을 얘기합니까. (서경배) 회장 국정감사 나온다니까 시늉하는 거지.”

21일 서울 중구 일대에서 만난 아모레퍼시픽 로드숍 가맹점주들은 불만을 쏟아냈다. 최근 아모레퍼시픽이 아리따움 점주·경영주협의회, 이니스프리 가맹점주협의회, 에뛰드하우스 경영주협의회와 잇따라 상생 협약을 했지만 현장에서는 “국감을 의식한 보여주기식 협약이다” “알맹이가 빠졌다” “협약을 제대로 이행할지 믿을 수 없다”는 등 불신과 불만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서경배(사진) 아모레퍼시픽 회장은 22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진행된 공정거래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가맹점주도 저희에게 중요한 파트너다. 앞으로도 가맹점과 더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 나가겠다”고 짤막하게 답변했다.

아모레퍼시픽과 가맹점주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갈등의 핵심은 온·오프라인에서 화장품 가격 차이가 크다는 데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같은 제품이면 값싼 온라인몰을 이용하는 게 당연하다. 특히 쿠팡 등 이커머스에서 판매되는 제품과 가격차가 크게 벌어지면서 가맹점주들의 어려움이 가속화되고 있다.

10만원대 화장품 세트가 온라인에서 할인가로 6만원대, 로드숍에서는 9만원으로 3만원 가까이 차이가 나기도 한다. 가맹점주가 본사에서 구매한 가격과 온라인 할인가가 비슷할 때도 있다. 취재에 응한 가맹점주 A씨는 “온라인보다 너무 비싸다는 손님에게 온라인 가격에 맞춰주려고 보니 본사에서 사온 가격이더라”며 “도저히 그 가격에는 팔 수 없어 손님을 돌려보냈다”고 했다.

이에 대해 가맹점주와 아모레퍼시픽의 주장에는 간극이 크다. 가맹점주들은 정가의 55% 정도 가격에서 자신들에게 공급되지만 쿠팡엔 37% 선에서 공급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아모레퍼시픽 측은 “오픈마켓 등 온라인몰과 가맹점의 공급가는 거의 차이가 나지 않는 수준”이라고 해명했다.

현장의 가맹점주들은 상생협약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었다. 한 가맹점주는 “아모레퍼시픽은 손님과 가맹점 사이에 문제가 발생해도 가맹점 쪽 얘기는 들어보지도 않고 내용증명을 보내기 일쑤”라며 “본사가 상황을 중재하지 않고 가맹점주에게 책임을 떠넘겨버리니 신뢰가 생길 수 없다”고 지적했다.

아모레퍼시픽 로드숍 브랜드 제품은 올리브영에까지 입점했다. 가맹점주들은 온라인에 밀리고 올리브영에도 치이는 상황이다. 에뛰드하우스 한 가맹점주는 “손님들이 올리브영에서 할인된 가격만 생각하고 우리가 가격을 올려 받는다고 오해한다”며 “‘여긴 왜 비싼 거냐’고 따지곤 그냥 나가버리는 일도 흔하다”고 말했다.

아예 가맹 계약 만료만 기다리고 있는 점주도 있었다. 에뛰드하우스에서 일하는 김모씨는 “사장님이 매장에 안 나오신 지 오래됐다. 매출이 안 나와 매장을 접으려고 연말에 계약 끝나는 것만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식으로 장사를 접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국회 정무위 소속 유의동 의원에 따르면 2018년 말부터 지난 8월까지 20개월간 아리따움, 이니스프리, 에뛰드하우스 등 3개 로드숍은 661개가 폐점했다. 20개월 동안 약 30%의 가맹점이 문을 닫았다.

정진영 문수정 기자 yo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