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만치 않은 ‘집안싸움’이었다. 사상 최초 올림픽 진출을 목전에 둔 축구 여자 성인대표팀(이하 대표팀)이 20세 이하 대표팀(이하 20세 대표팀) 동생들을 상대로 신승을 거뒀다. 언니들과 상대한 20세 대표팀도 내년 1월 열릴 20세 여자 월드컵 본선을 앞두고 탄탄한 조직력을 과시하며 대회 전망을 밝혔다.
콜린 벨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은 22일 경기도 파주 파주스타디움에서 허정재 감독이 지도하는 20세 대표팀을 상대로 친선경기를 벌인 끝에 전반 추가시간 터진 장슬기의 결승골로 1대0 승리를 거뒀다. 대표팀에 이번 경기는 올림픽 진출권이 달린 내년 3월 중국과의 플레이오프를 대비한 경기였다. 지난 2월 이후 8개월 만에 치른 경기다. 양 팀은 26일 비공개로 한 번 더 대결한다.
경기에서 먼저 기세를 높인 건 동생들이었다. 20세 대표팀은 양 날개를 폭넓게 활용하면서 측면에서 상대 골문을 위협했다. 양팀 선발 가운데 유일한 고등학생인 왼쪽 날개 이은영은 대표팀 주장 김혜리가 버틴 측면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최전방에서는 주장이자 주포 강지우가 시종일관 저돌적인 돌파와 넓은 활동량을 보였다. 함께 전방에 배치된 현슬기는 뒤에서 넘어온 공을 윤영글 골키퍼를 넘기는 슛으로 연결했지만 공이 골문 옆으로 빗겨갔다.
언니들의 반격도 무서웠다. 전반 왼쪽 날개 최효주의 슈팅으로 포문을 연 대표팀은 플레이메이커 이민아가 뒤이어 단독 찬스를 맞기도 했으나 미리 튀어나온 20세 대표팀 김민영 골키퍼의 선방으로 아쉬움을 삼켰다. 1년여 만에 대표팀에 복귀한 이민아는 중앙 미드필드 자리에서 측면 공간으로 침투하거나 동료에게 패스를 뿌리며 공격 기회 창출에 주력했다. 해외파 지소연이 빠진 중앙공격수 자리에 선발 기용된 전은하도 2선까지 자주 내려오며 활기를 불어넣었다.
후배들의 탄탄한 수비에 고전하던 대표팀은 전반 추가시간 스타 플레이어 이민아와 장슬기가 엮어낸 선제골로 한숨을 돌렸다. 이민아는 코너킥 상황에서 흘러나온 공을 오른 측면에서 잡아 유연한 볼터치로 상대 수비를 벗겨낸 뒤 크로스를 올렸다. 김민영 골키퍼가 이를 잡아내려다 실패하자 반대편 골문에서 장슬기가 튀어나온 공을 그대로 슛으로 연결해 골망을 갈랐다.
이날 대표팀 수비진에선 국내 WK리그에서 볼 수 있었던 선수들의 위치 변화가 어느 정도 반영됐다. 대표팀에서 4-3-4 대형의 중앙수비수와 왼쪽 풀백으로 오래 호흡을 맞춘 심서연과 장슬기는 이날 측면 수비와 미드필더 자리로 옮겨 활약했다. 특히 장슬기는 미드필드에서 특유의 투지 넘치는 플레이로 공수 양쪽을 지원해 경기 최우수선수상을 받았다. 과거 풀백으로 주로 활약한 이세진은 7년 만에 돌아온 대표팀에서 기존 중앙수비 주전 홍혜지의 빈 자리를 메우며 임선주와 호흡을 맞췄다.
벨 감독은 경기 뒤 인터뷰에서 “가용 자원이 (해외파 불참과 부상 등으로) 부족했기 때문에 장슬기를 올려쓰면서 심서연도 측면에 쓴 것”이라며 “덕분에 이세진도 새로 써볼 수 있었다. 심서연과 장슬기의 측면 연계도 좋았다”고 말했다. 이민아에 대해선 “오래 플레이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가 알던 수준의 기량을 보여주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최근 리그에서 플레이가 좋았고 훈련 태도도 매우 긍정적이다. 진전이 있다”고 설명했다.
파주=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