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정치가 검찰을 덮어 버렸다”

입력 2020-10-23 04:03
라임자산운용 펀드 사기 사건 수사를 지휘해 온 박순철 서울남부지검장이 22일 검찰 내부 통신망에 장문의 글을 올리고 사의를 표명했다. 박 지검장은 ‘라임 사태에 대한 입장’이란 제목의 글에서 “정치가 검찰을 덮어 버렸다”고 했다.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를 해 왔는데 정치권과 언론이 각자의 유불리에 따라 비판을 계속하고 있어 어떤 수사 결과를 내놓더라도 공정성을 의심받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또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지난 19일 수사지휘권 발동의 부당함을 조목조목 지적하고 이번 조치가 수사와 검찰에 대한 불신을 키웠다고 비판했다. 검찰 수사에 대한 정치권의 아전인수식 대응도 꼬집었는데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다. 그는 의정부지검장 시절 기소한 윤석열 검찰총장 장모 관련 사건 수사 당시 처음에는 야당이 수사 필요성을 주장하고 여당이 반대했는데 윤 총장과 여권의 사이가 틀어진 후에는 여당이 수사 필요성을 주장하고 야당이 반대하는 상황이 연출된 사례를 거론했다.

정치권은 라임 수사에서도 비슷한 행태를 보였다. 주요 피의자인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이 법정에서 강기정 전 청와대 정무수석에게 전달하라며 5000만원을 줬다고 증언하자 여권은 김 전 회장을 사기꾼으로 몰아붙이더니 그가 야권 인사 로비와 검사 접대 등을 주장하는 입장문을 내자 기정사실화해 신속한 수사를 촉구하고 나섰다.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반응이 손바닥 뒤집듯 바뀌는 모습을 지켜보는 건 당혹스럽다. 검찰 수사를 놓고 여야가 정반대의 해석과 주문을 내놓는 것은 이제 정치권의 일상적인 풍경이 돼 버렸다. ‘상대편’에 대한 의혹은 부풀려 수사를 독려하고 ‘내편’에 대한 수사는 대놓고 비판하면서 검찰을 흔드는 일이 다반사다.

검찰은 여야를 가리지 않고 공정하고 엄정하게 수사해야 마땅하고 국민들도 그걸 기대하고 있다. 검찰 개혁은 그런 검찰을 만들자는 것 아닌가. 추 장관과 여당은 충분한 근거도 없이 검찰에 대한 불신을 부추기는 발언을 즉각 중단하기 바란다. 수사팀이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할 수 있게 독립성을 철저히 보장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