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을 떠나보낸 노목회자의 간간절절한 고백이 지난 며칠 동안 한국교회에 큰 울림을 낳았다. 이동원 지구촌교회 원로목사는 암을 앓던 차남(이범 집사)이 지난 9일 43세로 세상을 뜨자 심경을 담은 글을 지인들에게 보냈다. 이 목사는 국제변호사였던 아들이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고 서둘러 미국으로 갔으나 임종을 못 했다. 그는 ‘아들이 걸었던 산책길’이란 글에서 “네가 짧게 머물던 집으로 돌아오며, 우리 다시 만날 하늘 집을 그린다. 넌 이 집으로 다시 못 오겠지만, 엄마와 난 하늘 집으로 찾아가마. 곧 머지않아…”라며 ‘아들이 하늘로 떠난 셋째 날에 LA에서 이동원…’이라고 썼다.
다른 글에서는 “그리스도인이란, 답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답을 모른 채로 믿음으로 앞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이란 말이 마음에 들어온다”며 “아들을 불러가신 이유에 대한 답을 찾지 못했고, 영원히 찾지 못할 듯하다. 그래도 믿음으로 나아가야 할 것, 위로와 기도를 보내주신 모든 동역자에게 감사드린다”고 했다. 이 목사는 또 다른 글에서 아들의 투병과 죽음을 통해 경험한 감사의 사례를 밝혔다. 유머가 많았던 아들 때문에 기뻤던 일, 단 한 번도 불평 없이 자랑만 하던 며느리와 애굣덩어리 손자를 남겨준 사실, 게임을 좋아하더니 게임변호사가 된 점 등 추억을 갖게 한 아들에게 고마워했다. 많은 암환자와 가족들의 아픔과 이별을 받아들이게 됐고 천국을 더 가까이 소망하게 된 점 등 아들의 상실로 연대와 소망의 가치를 깨달을 수 있었다는 것에 기꺼워했다. 10가지의 감사내역을 적은 글의 제목은 ‘아들 범과 작별하며 드리는 감사’였다.
자식은 먼저 보낼 수 없는 존재다. 그래서 가슴에 묻는다고 한다. 이스라엘 민족을 구한 영웅이자 불세출의 지도자인 다윗은 아들 압살롬의 죽음을 전해 듣고 통곡했다. 너 대신에 차라리 내가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 울부짖었다. 머리를 가린 채 맨발로 올리브 산 언덕을 울면서 올라갔다. 자신을 향해 칼을 겨누며 쿠데타를 일으켰다 실패해 전사한 패륜아조차도 아비에게는 그저 자식이었다. 예수가 죽었을 때 성소 휘장이 찢어지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무덤이 열린 것은 아들의 죽음을 애도하고 분노한 하나님의 징표다.
자식을 앞세우는 언어는 이미 참담함을 내포하고 있다. ‘단장지애(斷腸之哀)’나 ‘참척(慘慽)’은 각각 창자를 끊어내는 듯한 아픔과 참혹한 슬픔을 의미한다. ‘상명지통(喪明之痛)’은 공자의 제자인 자하(子夏)가 아들이 죽었을 때 너무 많이 울어 눈이 멀었다는 것을 뜻한다. 목사의 아들이자 신사참배 거부로 투옥되기도 한 독실한 기독교인인 시인 김현승은 1957년 발표한 시 ‘눈물’에서 아들을 잃은 심사를 토로했다. 시인은 아들을 ‘나의 가장 나중 지니인 것’이라고 표현했다. 세상을 떠난 아들을 ‘자신의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재확인했다. 자식은, 특히 먼저 간 어린 피붙이는 지워지지 않는 그리움이다.
이동원 목사는 한국을 대표하는 큰 목사다. 옥한흠, 하용조, 홍정길 목사와 함께 ‘복음주의 4인방’으로 불리는 명망 있는 목회자다. 믿음이 좋고 교회를 성공적으로 섬긴 신실한 목사라고 아들과의 단절이 쉽게 받아들여 질까. 절대 그렇지 않다. 그는 아들을 불러간 이유를 몰라 안타까워했고, 아내와 함께 아들 곁으로 가고 싶다고 했다. 여기까지였다면 평범한 아비였다. 이 목사는 그리움과 슬픔을 넘어 희망과 감사의 신앙고백을 되뇌었다.
죽음보다 못한 삶이 곳곳에서 목격되는 요즈음, 삶보다 괜찮은 함의를 내포한 죽음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준 노목사의 술회가 든든하다. 그의 메시지는 한국교회 신앙의 뿌리가 튼튼하다는 것을 재확인한 귀한 조사(弔辭)였다.
정진영 종교국장 jy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