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월성 원전 조기 폐쇄하려고 경제성 평가 왜곡했다니

입력 2020-10-21 04:01
한국수력원자력이 2018년 6월 경주 월성 원전 1호기 조기 폐쇄 결정 과정에서 원전 계속 가동의 경제성을 불합리하게 낮게 평가했다는 내용의 감사원 감사 보고서가 20일 공개됐다. 감사원은 한수원 직원들이 경제성 평가 용역 보고서에 담긴 판매단가가 실제보다 낮게 책정됐음을 알면서도 바로잡지 않고 평가에 사용토록 했다고 지적했다. 또 산업통상자원부 직원들이 경제성 평가에 부당하게 개입했고 백운규 당시 산업부 장관은 이를 묵인했다고 밝혔다. 감사원은 조기 폐쇄 결정의 타당성 여부에 관해서는 판단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경제성 측면에서는 하자가 있었다고 결론을 내린 셈이다.

조기 폐쇄를 밀어붙이기 위해 경제성 평가를 왜곡한 것은 엄정히 책임을 물어야 할 사안이다. 하지만 감사원은 평가 시 적용할 수 있는 명시적인 규정이 없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조기 폐쇄를 결정한 한수원 이사들에게 책임을 묻지 않았다. 사장에 대한 엄중 주의 조치를 산업부에 요구하고 백 전 장관에 대한 인사자료로 활용하라고 한 게 고작이다. 여권의 압박이 거셌고 감사보고서 의결을 놓고 감사위원들 간 의견이 갈려 감사위원회를 수차례 열어야 했을 정도로 진통이 있었다는 걸 감안해도 아쉬운 결론이다.

제한된 감사 결과지만 여권은 감사원의 지적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최재형 감사원장을 포함해 의결에 참여한 감사위원 6명이 모두 문재인정부 들어 임명됐다. 그런데도 경제성 평가가 불합리하게 이뤄졌다는 결론이 나온 것은 월성 1호기 조기 폐쇄와 즉시 가동중단 결정 과정에 중대한 잘못이 있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감사 결과 공개 후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이 “통상적 감사를 에너지 전환의 심판대인양 논란을 키웠다”며 감사원 등에 비판의 화살을 겨눈 것은 실망스럽다. 자성을 하기는커녕 남탓을 하는 무책임한 태도다.

탈원전 정책이 주요 국정 과제라고 해도 정당한 근거, 적법한 절차, 국가 예산 낭비 최소화 원칙 등을 고려해 추진돼야 하는 건 물론이다. 그래야 정책의 부작용을 줄이고 국익 훼손을 최소화할 수 있다. 정부는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과정을 복기해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는 반면교사로 삼길 바란다. 감사 과정에서 관련 자료를 삭제하는 등 감사를 방해했다며 감사원이 징계를 요구한 산업부 직원들도 엄히 문책해야 한다. 야당도 감사 결과를 ‘탈원전 정책에 대한 사망선고’라고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해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건 자제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