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우여곡절을 겪은 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가 21일 10일간의 여정에 돌입한다. 예년에 비해 규모가 많이 축소되긴 했지만 국내외 영화인의 시선은 다시 부산으로 쏠리고 있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를 오프라인으로 개최하기까지 다사다난한 과정을 거쳤다. 앞서 코로나19로 칸 국제영화제를 비롯해 크고 작은 세계 유수의 영화제들이 줄줄이 취소되거나 연기됐다. 부산영화제도 어그러질 뻔했다. 코로나19 확산세로 2주가 밀렸던 영화제는 불과 일주일 전까지도 취소를 타진 중이었다. 다행히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가 1단계로 조정되면서 오프라인 개최로 가닥을 잡았다.
오프라인 개최가 성사되긴 했지만 예년의 축제 분위기는 느끼기 힘들 전망이다. 매년 300여편에 달했던 초청작이 올해는 68개국 192편으로 줄었다. 국내외 톱스타와 거장이 레드카펫을 수놓는 ‘영화제의 꽃’ 개·폐막식도 없어졌다. 그 영향인지 개막을 하루 앞둔 20일 부산 센텀시티 영화의전당 주변은 들뜨지 않고 조용했다. 관객 동선을 일원화하기 위해 영화의전당 곳곳을 에워싼 펜스에서는 비장함마저 묻어났다.
아시아프로젝트마켓·아시아콘텐츠&필름마켓 등 관련 행사도 온라인으로 전환됐다. 2주간의 자가격리 기간을 감안할 때 해외 게스트 초청이 어려워져서다. ‘게스트와의 만남’ 역시 국내 감독·배우 위주로 45차례 정도만 소규모로 이뤄진다. ‘미나리’의 윤여정·한예리, ‘사라진 시간’의 정진영 감독 등이 부산을 찾는다. ‘미나마타 만다라’ ‘시티홀’ ‘먼바다까지 헤엄쳐 가기’ ‘트루 마더스’ 등 해외 작품은 온라인으로 관객을 만난다.
영화제 행사가 전부 축소되거나 온라인으로 전환됐지만 상영작에 대한 관심은 예년의 열기 못지 않다. 정상적으로 개최되지 못한 세계 영화제 수상작·화제작이 대거 라인업에 포함됐다. 지난 15일 오후 2시 표 판매와 동시에 화제작은 매진됐고 단 2시간 만에 상영작 전체의 7할이 팔려나갔다. 20일 오전 10시 기준 예매율은 88%에 달한다. 티켓 확보에 실패한 관객들이 취소 표를 잡기 위해 수시로 예매 사이트를 확인하는 모습도 눈에 띈다.
화제의 중심에는 단연 개·폐막작이 있다. 개막작은 옴니버스 영화 ‘칠중주: 홍콩이야기’. 훙진바오(홍금보)를 비롯해 안후이(허안화) 패트릭 탐(담가명) 위안허핑(원화평) 린링둥(임영동) 조니 토(두기봉) 쉬커(서극) 같은 홍콩을 대표하는 감독 7명의 시선이 한 작품에 담겼다. 각 편은 10~15분 남짓으로, 1950년대 이후 홍콩 사회의 이면이 거장들에 의해 오밀조밀하게 펼쳐진다. 칸 영화제 공식 선정작에 포함되기도 한 이 영화는 21일 오후 8시 야외극장에서 월드 프리미어(세계 최초)로 공개된다.
폐막작에는 다무라 코타로 감독의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 뽑혔다. 이누도 잇신 감독의 동명 영화를 애니메이션화한 작품이다. 두 청춘의 사랑과 이별을 담담한 시선으로 담아낸 원작 영화는 2004년 국내에 개봉해 잔잔한 감동을 안겼다. 따뜻한 성장영화로 표현된 이번 애니메이션 제작에는 ‘카우보비 비밥’ ‘강철의 연금술사’ ‘스페이스 댄디’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등 유명 애니메이션을 선보여온 스튜디오 본즈가 참여했다.
이밖에도 아시아 지역에서 최초로 공개되는 픽사 애니메이션 ‘소울’, ‘사탄은 없다’(베를린영화제 황금곰상), ‘스파이의 아내’(베니스영화제 은사자상) 등에도 관심이 쏠린다. 리 아이작 정 감독의 ‘미나리’, 데아 클룸베가쉬빌리의 ‘비기닝’, 미나 케샤바르츠의 ‘생존의 기술’, 가와세 나오미의 ‘트루 마더스’도 빼어난 만듦새로 일찌감치 입소문을 타고 있다.
부산=강경루 기자 r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