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출·돌봄시설 스톱… “치매, 최대 요인은 단조로운 일상 반복”

입력 2020-10-21 04:02
방호복을 입은 의료진이 20일 경기도 시흥 포동시민운동장에 설치된 선별진료소에서 코로나19 검체를 채취하고 있다. 방역 당국은 현재 수도권 지역 노인요양시설 등의 종사자와 이용자를 대상으로 코로나19 일제 진단검사를 진행 중이다. 연합뉴스

국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치매 환자를 둔 가족들의 걱정이 늘고 있다. 활동량과 인지 자극이 부족해지면 치매 악화로 이어질 수 있지만 감염 우려 때문에 외출 등을 극도로 자제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진 것이다. 전문가들은 지나친 보호가 환자의 상태를 악화시킬 수 있다며 적정 수준의 바깥 활동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초등학교 방과후 강사 허혜경(62·여)씨도 이들 가운데 1명이다. 치매 진단을 받은 지 7년 된 노모를 둔 허씨는 19일 “코로나19 때문에 벌써 몇 개월째 답답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허씨는 어머니의 치매가 지난해 10월 이후 눈에 띄게 진행됐다고 했다. 6년간 치매를 앓으면서도 딸은 알아봤지만, 올해 들어서는 환갑을 넘긴 허씨를 앞에 두고 “우리 딸은 어린아이”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운동 능력도 떨어져 산책을 즐겼던 어머니가 10분 남짓 걷는 것도 버거워하게 됐다.

허씨의 고민은 코로나19 때문에 외출을 피하게 돼 치매 관리가 어려워졌다는 것이었다. 어머니가 좋아하던 불고기 식당에서의 외식은 고사하고 산책도 그만뒀다. 지난달 초 수도권 주간보호센터에서 집단감염이 터졌다는 뉴스를 본 뒤로는 주간보호센터 이용도 꺼려졌다. 허씨는 “면역력이 약한 고령자들이라 위험한데 치매 환자 특성상 마스크 착용도 철저히 안 된다”며 “몸을 움직여야 뇌도 자극이 된다는데 외출도 못 하니 답답할 따름”이라고 하소연했다.

수개월째 TV와 신문만 보고 있는 치매 환자 90대 아버지를 둔 주부 천모(60)씨 역시 비슷한 딜레마에 빠졌다. 코로나19 걱정이 앞서다 보니 외출 자체를 꺼리는 건 물론 다른 친척들의 방문도 사양하고 있다.

감염 우려로 각종 돌봄시설의 운영에 제동이 걸린 점도 가족들의 고민을 깊어지게 한다. 코로나19 이전 천씨의 아버지가 종종 찾았던 지역 치매안심센터는 대면 사업을 대폭 축소했다. 천씨의 어머니가 다니는 주간보호센터는 외부 강사들의 출입을 금지했다. 천씨는 “전에는 센터에서 (외부 프로그램을 통해) 활기차게 노래도 부르셨는데 그런 활동이 중단된 점은 아쉽다”고 말했다.

일부 치매안심센터 등 기관들이 안부전화 서비스, 가정에서 이용할 수 있는 수공예 키트, 보호자·환자 대상 화상 교육 등을 제공하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 이찬녕 고대안암병원 신경과 교수는 “치매 환자들은 적응력이 약해 비대면 활동이나 교육을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다”며 “보호자를 통한다고 해도 가정 내에서의 활동·교육은 전문성이 떨어지기에 결국 차선책”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에 대한 불안 때문에 모든 바깥 활동을 멈출 필요는 없다고 설명했다. 방역 수칙에 어긋나지 않는 야외 활동은 오히려 권장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집 안에 머무르며 TV 시청 등 단조로운 일상을 반복하는 것은 치매의 최대 악화 요인”이라며 “외출이 불안하다면 화투나 그림처럼 실내에서 즐길 수 있는 취미를 계발하도록 도와야 한다”고 조언했다.

송경모 기자 ss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