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태근 목사의 묵상 일침] 낭실과 제단 사이에서 울라

입력 2020-10-21 03:01

구약성경 요엘서는 ‘여호와의 날’을 경고한다. 여호와의 날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크고 두려운 날이다.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을 재앙의 날이다. 바로 그날이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닥쳐와 있다고 요엘은 외친다.

역설적이게도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향해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시는 것은 기회를 주기 위함이다.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욜 2:12) 하나님의 심판이 가까이 와 있지만, 아직 기회가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너무 멀리 떠난 그들이었지만 하나님은 그들이 ‘이제라도’ 경고 소리를 듣고 돌아오기를 기대하신다.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언제나 재앙이 아니라 생명과 평안이다.

그래서 요엘 선지자는 공동체가 하나님 앞에 나와 제의적 형식을 갖추고 회개할 것을 촉구한다. 금식일을 정하고 성회를 소집하여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 부르짖으라 외친다. 이러한 제의적 회개를 강조하는 것은 더 본질적으로 그들의 마음을 찢도록 하기 위함이다. 형식적인 회개로 옷을 찢는 것은 차라리 쉬운 일이다. 그러나 그들은 옷을 찢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찢어야 했다. 하나님은 마음의 중심을 살피신다.

그렇다면 그들은 무엇을 회개해야 하는가. 독특하게도 요엘서에는 다른 선지서들과 달리 회개해야 할 구체적 죄목이 열거되지 않는다. 다만 요엘은 제사장들을 향해 ‘낭실(廊室)과 제단 사이’에서 울라고 말한다.(욜 2:17) 이곳은 제사장들이 제사를 준비하는 공간이었다. 그런데 이 자리는 또한 우상숭배의 현장이기도 했다. 에스겔서에서는 낭실과 제단 사이에서 제사장들이 하나님께 등을 지고 우상을 숭배했었다는 사실이 폭로된다.(겔 8:16)

바로 여기에 그들이 울며 마음을 찢어야 할 이유가 있었다. 칼뱅은 ‘타락한 인간의 마음은 우상을 만드는 공장’이라고 했다. 무엇이 우상인가. 하나님을 대신해 내 마음속 든든함을 주는 모든 것들이 우상이다. 하나님을 대신해 의지하는 모든 것들이 우상이요, 자신의 자원과 힘으로 살아가겠다는 태도 역시 우상숭배와 다름없다. 하나님께 예배하는 공간이 우상숭배 현장이 되었던 것처럼, 우리의 마음 역시 우상의 처소가 되기 쉽다. 그러므로 나 중심으로 가득 찬 마음을 찢어 주님 앞에 다시 온전히 돌려드리는 것이야말로 회개다.

코로나19로 거의 1년 가까이 우리는 이전처럼 예배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러한 초유의 상황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것은 ‘과연 우리는 하나님 앞에 신실한 예배자였는가’ 하는 물음으로 귀결된다. 우리가 하나님을 온전히 섬겨 왔는지, 아니면 오히려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우리 마음속에서 만들어낸 여러 우상을 모시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물어야 한다. 한국교회가 진정으로 하나님만 의지해 왔는지, 아니면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무엇인가 도모해보고자 했던 것은 아닌지, 우리 가슴을 치며 마음을 찢어야 한다.

회개와 회복은 우리의 자정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하심에 기초한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욜 2:13) 하나님의 자비와 인애, 곧 ‘헤세드’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이다. 이제라도 이 자비와 사랑을 의지하여 주님 앞으로 돌이켜 마음을 찢어야 할 때다. 우리 모습을 보면 소망이 없고 답답하지만 긍휼의 하나님 안에서 새로운 희망을 찾아야 한다. 그분은 우리를 향해 그 손을 거두지 않으시겠다 약속하셨다. 그 약속을 믿고 다시 한번 우리의 누추한 몸과 마음을 주님 앞에 드리며 나아가길 소망한다.

송태근 목사(삼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