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신웅 (13) 보복하려 만난 처형에게 “용서할 테니 잘 사시오”

입력 2020-10-22 03:01
김신웅 장로가 재소자들을 상담하며 기도해 주기 위해 38년간 매일 방문하고 있는 청송 제1감호소.

다음 날부터 나는 신문 사회면과 9시 뉴스를 빠지지 않고 시청했다. 혹시라도 영진이가 보복 살인을 하거나 상해를 입히지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이었다. 실제로 출소 후에 그런 일을 벌이는 재소자들이 있었다. 혹시나 영진이의 뉴스가 나오지 않을까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매일 신문을 챙겨 읽어봤지만, 다행히 그런 기사는 어디에도 없었다.

나는 날마다 “영진이가 사랑의 사람이 돼 그 모든 것을 용서해주는 신앙인이 되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며칠 후 영진이로부터 편지가 왔다. 대학노트 앞뒤로 5장이나 빼곡히 채워진 편지였다. 그의 편지를 읽은 나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다시 한번 체험했다. 편지 내용은 이랬다.

영진이는 출소하는 날 우리 집에 들러 나를 만나고 가면 증오의 세월 5년이 무산될까 싶어 그대로 서울로 올라갔다. 누가 뭐라 해도 자신의 아내와 처가 식구를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하며 하루 만에 아내의 거주지를 알아냈다. 밤 12시에 처가에 전화했다. “나는 어제 교도소에서 나왔다. 만나자. 약속장소에 나오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겠다.” 전화를 받은 처형은 덜덜 떠는 목소리로 “알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영진이에게 처형은 아내보다 더 미운 상대였다. 5년간 감옥에서 품어온 한을 풀 수 있는 시간이 왔다고 생각한 그는 복수를 위한 준비를 마치고 약속된 다방으로 갔다. 다방에 먼저 도착해 처형을 기다렸다. 잠시 후 다방 문이 열렸다. 처형이 혼자 들어와 영진이 앞에 앉았다. 너무나 초라한 행색이었다. 얼굴은 또 어찌나 초췌한지 그런 처형을 마주하고 있으니 만감이 교차했다. 그러다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공포에 질려 고개도 들지 못한 채 앉아 있는 처형에게 영진이는 자신도 모르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청송감호소 감방에 있을 때 성경이란 책을 보니까 사랑이란 게 있던데, 그 사랑은 용서가 반드시 따른다고 하더이다. 그래서 나도 그 말씀처럼 당신네를 용서할 테니 마음 편히 잘 사시오.”

영진이도 자신이 한 말을 내뱉고 깜짝 놀랐다. ‘이 말을 하려던 게 아닌데,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나’ 이런 마음이 들었지만, 겁에 질린 처형이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의식한 그는 일어서서 다방 밖으로 뛰쳐 나왔다.

집으로 돌아온 영진이는 생각에 빠졌다. ‘내가 어떻게 그녀를 용서해줄 수 있었단 말인가.’ 답을 찾다 보니 ‘피도 살도 섞이지 않은 김신웅 장로와 엄성수 담당이 부족한 나를 위해 한 눈물 어린 기도와 사랑 때문’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했다. 그날 영진이는 정말 오랜만에 편안한 맘으로 단잠을 이룰 수 있었다고 전했다.

그렇다. 갇힌 자, 상처 입은 자, 한 맺힌 자, 증오와 복수에 불타는 자, 그들을 변화시키는 최선의 처방은 사랑이다. 다함이 없는 끊임 없는 사랑 말이다.

정리=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