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윤석열 검찰총장의 라임자산운용 로비 의혹 사건, 가족·측근 고발 사건 지휘권을 박탈하는 수사지휘권을 행사했다. 윤 총장이 야권 정치인 수사지휘를 제대로 하지 않았으며 가족·측근 관련 사건은 장기화하고 있다는 질책의 의미였다. 법무부 장관의 검찰총장에 대한 수사지휘권 행사는 역사상 세 번째인데 추 장관이 지난 7월에 이어 두 번째로 행사했다.
추 장관은 19일 오후 “라임 사건과 윤 총장 가족 관련 사건에서 공정하고 독립적인 수사를 보장할 필요가 있다”며 수사지휘권을 행사했다. 윤 총장이 라임 사건을 수사하는 서울남부지검, 가족·측근들이 각종 의혹으로 고발된 서울중앙지검으로부터 수사 결과만을 보고받도록 하는 내용이었다. 추 장관은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으로부터 향응을 받은 의혹이 제기된 검사와 검찰 수사관을 서울남부지검 수사·공판에서 배제하도록 했다. 총장 가족 사건을 수사하는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은 강화토록 주문했다.
검찰은 최근 화제가 된 라임 사건 이외에도 윤 총장의 배우자, 장모를 둘러싼 사건들까지 언급된 점에 주목했다. 사실상 총장에 대한 노골적 퇴진 압박이라는 해석이었다. 추 장관은 윤 총장이 서울중앙지검장일 때 배우자가 주도한 각종 전시회 개최 과정에서 수사 대상자인 회사로부터 협찬금 명목으로 거액을 수수한 의혹이 있다고 했다. 도이치모터스 관련 주가조작 사건에 배우자가 관여됐다는 의혹, 장모의 요양병원 운영 관련 의혹도 거론했다.
추 장관은 “장관의 수사지휘가 즉시 효력이 발생하는 것으로 이해한다”고 했다. 지난 7월 ‘검·언 유착’ 의혹 사건 수사를 놓고 수사지휘권을 행사했을 때 직면한 검찰의 반발 기류를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검사장급 이상 간부들이 모여 추 장관의 지휘권 행사가 위법하다는 의견을 모았었다. 다만 윤 총장은 이후 “수사지휘권 박탈은 형성적 처분(지휘권이 이미 상실됐다는 의미)”이라 밝히며 ‘항명’ 논란을 피했었다.
윤 총장은 “법무부 조치에 의해 총장은 더 이상 라임 사건 수사를 지휘할 수 없게 됐다”는 입장을 밝혔다. 윤 총장은 “수사팀은 검찰의 책무를 엄중히 인식하고, 대규모 펀드 사기를 저지른 세력과 이를 비호하는 세력 모두를 철저히 단죄하라”는 마지막 지휘를 했다. 윤 총장은 “피해자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기 바란다”고도 했다. 법조계에서는 ‘비호하는 세력’이란 표현 속에 의미가 있다는 해석도 나왔다. 권력형 비리 수사 도중 총장의 지휘권이 박탈됐다는 것이다.
윤 총장은 가족·측근 관련 사건은 따로 언급하지 않았다. 대검 관계자는 “총장은 애초 가족 관련 사건 수사에 대해 개입하거나 보고를 받지 않았다”고 했다. 법조계에서는 예외적으로 쓰여야 할 장관의 수사지휘권이 빈번하게 행사된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 전직 검찰총장은 “정치 권력과 수사권의 분리를 위해 검찰총장을 따로 둬 왔다”며 “이럴 거라면 뭐하러 총장을 두느냐”고 반문했다.
허경구 나성원 기자 ni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