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절망과 낙심에 빠져있던 제자들에게 부활의 영광스러운 몸으로 나타나셔서 40일간 마지막 제자훈련을 시키셨고, 승천하시기 직전 그들에게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마 28:19)고 간곡히 명령하셨다.
예수님의 이 명령을 목회자나 해외 사역지로 파송 받는 선교사들을 독려하는 말씀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처음부터 하나님의 계획은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전해지기까지 예수님을 따르는 모든 사람이 제자 삼는 일에 헌신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는 소중한 명령을 변질시켜버렸다. 그리스도 예수는 모든 민족에게 가서 제자를 삼고 세례를 베풀고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명령하셨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크리스천은 일정한 장소, 성전에 와서 편안하게 예배드리고 배우라는 요청으로 받아들인다. 오랫동안 신앙생활과 봉사하면서도 사실은 그리스도의 명령을 외면하는 잘못을 범하고 있는 것이다.
평신도에게 전도는 여전히 두려운 주제이며 더구나 제자 삼는 것은 너무나 부담스러운 일처럼 들릴 뿐이다. 그래서 안타깝게도 오늘날 교회의 현실에서 제자 양육은 목회자와 전문 사역자와 선교사들의 전유물이 되고 말았다.
예수님은 지상에서 복음 사역을 하신 3년 반의 기간, 수많은 병자를 치유하시고 복음도 전하시고 오병이어 같은 기적을 베푸셨다. 중요한 것은 그분이 인생 3분의 2를 소수의 사람, 소그룹의 사람, 바로 12명의 제자에게 다 쏟으셨다는 사실이다. 왜 하나님이신 그분이, 하늘의 지혜와 권세를 가지신 그분이 그렇게 하셨을까.
그분의 꿈, 그분의 비전인 하나님 나라의 완성은 오직 신자가 아닌 제자를 통해서만 이루어짐을 아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12명을 부르셔서 제자 삼으시고, 3년 반 동안 훈련시키셨다. 그리고 이 땅을 떠나시면서 동일하게 당신이 모델로 보여줬던 ‘너희는 가서 제자 삼으라’는 비전을 그대로 우리에게 위임하신 것이다. 왜 그렇게 권면이나 부탁이 아닌 명령을 하셨는가. 신자가 아닌 제자만이 하나님 나라를 완성 시키는 주역이 되기 때문이다.
신자와 제자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신자는 예수를 믿고 영생과 천국을 소유한 자다. 그러나 신앙생활의 중심이 마치 예수님을 따라다닌 수많은 무리와 같다. 당시 무리는 자기의 필요를 위해, 좋은 가르침을 듣기 위해 예수님을 찾아왔다. 이들은 자신의 많은 문제를 해결 받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일 뿐이다.
결국 ‘주여’를 외치지만 신앙 중심이 사실은 주님이 아니라 ‘나’인 것이다. 내가 좋아야 주님을 따른다. 그러나 내가 싫으면 그만이다. 안 한다. 움직이지 않는다. 언제라도 공동체를 떠난다.
제자는 다르다. 예수를 믿고 영생과 천국을 소유하는 수준에서 그치지 않는다. 싫어도 힘들어도, 때론 목숨을 위협받아도 주님의 뒤를 따라간다. 스승의 뒤를 따라간다. 제자는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사람들이다. 그분의 명령하신 ‘가서 제자 삼으라’는 그분의 비전, 하나님 나라를 우선순위로 삼는다. 이 사람이 제자다.
초대교회 구성원들은 제자 양육의 의무를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그들에게 교회는 CEO가 운영하는 회사가 아니었다. 그들은 오히려 교회를 각 지체가 자기 역할을 해야만 정상적으로 움직이는 몸으로 인식했다. 그래서 셀 제자양육은 모든 평신도가 ‘가서 제자 삼으라’는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아름다운 훈련의 장이다.
소수의 목회자가 성도들을 모두 제자 삼는 것은 한계가 있고 운신의 폭이 좁다. 그러나 많은 평신도가 그들의 삶의 현장에 가서 동시다발적으로 전도해 제자 삼을 때 훨씬 더 효과적으로 하나님 나라의 번성의 축복을 누릴 수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비대면이 일상화되면서 전도가 극히 힘든 이 시대에 셀 제자양육은 더욱 빛을 발한다. 평신도는 그들의 삶의 현장에서 이미 관계를 맺는 불신자에게 셀 제자양육 교재로 자연스럽게 복음을 전한다. 교재는 양육의 좋은 무기가 된다.
제자양육을 받아 이제 막 예수님을 영접한 불신자라 하더라도 교재를 갖고 친밀한 관계가 있다면 또 다른 사람을 양육할 수 있다. 교재 내용이 쉽고 단순하게 구성돼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기가 배운 내용을 그대로 전달만 하면 된다.
지난해 셀 제자양육 교재를 적용한 지 6개월이 됐을 때 76명의 평신도가 그들의 삶의 현장인 사무실, 캠퍼스, 카페, 아파트, 원룸 등에서 총 296명을 제자 삼아 양육했다. 한마디로 76개의 작은 소그룹교회가 삶의 현장에서 개척된 것이다.
지금은 놀라운 간증이 쏟아지고 있다. 이혼 직전까지 갔던 부부가 제자양육을 통해 회복됐다. 갈등하던 부모와 자녀가 하나가 됐다. 병원에서 환자가 양육을 받고 제자가 되고 제자 양육 현장을 지켜보던 사람이 ‘나도 양육 받게 해달라’고 요청해 제자가 되고 있다. 셀 제자양육을 통해 장기결석자, 교회를 떠난 사람들이 주님의 성전으로 돌아오고 있다.
[코로나19시대 셀 제자양육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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