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의 지난해 결정에 따라 정부가 임신 초기 낙태를 전면 허용하는 형법과 모자보건법 개정안을 최근 입법 예고했다. 생명 존중과 여성의 자기 결정권 보호를 두고 찬반 논란이 거세다.
개정안은 임신 14주까지 여성의 결정으로 조건 없이 낙태를 허용하고 24주까지는 여성의 사회적·경제적 사유로 인한 낙태를 허용한다. 여기에는 학업 중이거나 직장 생활에 지장이 있는 경우, 상대 남성이 육아 책임을 거부하거나 소득이 불충분해 아이를 키울 여력이 없는 경우 등이 모두 포함된다.
지금도 성폭행이나 근친 간 임신, 임부의 건강이 위험한 경우 등 예외적으로 낙태가 허용되나 사회·경제적 여건을 이유로 한 낙태를 일반적으로 허용하는 것이 이번 개정안의 특징이다. 이 경우 일정한 상담을 받고 1일간의 숙려 기간을 거치도록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배우자의 동의나 미성년자의 경우 부모의 동의는 요건이 아니다.
찬반 논리는 모두 일리가 있고 서로 대화가 어려우리만큼 팽팽히 맞서고 있다. 임신 순간부터 모성애가 작동해 태아와 자신을 일체로 여기고 향후 태아의 삶을 누구보다 염려하는 것은 임신 여성임에 틀림이 없다. 그들이 태아를 지우기까지의 결정은 전인격적이고 삶의 총체적인 고민에서 내린 결정이며, 어쩌면 낙태 처벌 여부보다 더 근원적인 것인데 국가가 이를 형벌로 간섭하면 여성을 얽어맨다는 게 낙태 처벌 반대의 논리다.
‘생명권이 고귀하다’는 말로 간단히 일축하기 어려운 여성들의 고민과 삶의 애로가 그 속에 있다. 헌재는 이를 여성의 자기결정권이라는 기본권 보장 측면에서 인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명을 없애는 것을 허용하는 부담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는 여성이 갖는 삶의 ‘곤경’에 대한 고민보다 어쩌면 더 근원적으로 창조된 존재로서 인간이 갖는 또 다른 심층적 고민에 해당한다. 아무리 애로가 중하고 이유가 있더라도 살인은 안되는 것 아닌가, 존귀한 생명을 박탈함은 인간의 영역이 아니지 않은가 하는 고민이다. 현실과 절대 규범의 괴리 속에 고민하면서도 이를 지키려고 몸부림치는 것이 인간 삶의 본 모습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태아는 임신 6주가 되면 심장박동을 시작하고 이후에는 대부분(95~98%)이 만기까지 성장해 출산에 이른다. 임신 22주가 되면 태아의 독자 생존이 가능하다. 이 시점 이후에는 낙태를 허용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 입법례인 듯하다. 헌재도 이를 받아들여 임신 22주 내 낙태허용 여부를 결정(입법)하라는 취지로 판시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개정안이 24주까지 낙태를 허용하는 것은 헌재 결정보다 너무 나간 입법이라는 비판이 가능하다. 낙태의 약 95%가 12주 이내에 이뤄지는 우리 현실에 비춰 보면 사유 없이도 14주까지 낙태를 허용한 것은 현재 이뤄지는 낙태를 모두 허용하겠다는 것과 다름이 없다. 개정안은 외국과 비교해봐도 숙려기간이 지나치게 짧다. 사회적·경제적 이유로 인한 ‘심각한 곤경’과 같은 요건은 처벌 법규의 법률명확성 원칙에 위배된다는 입법 기술상의 문제점도 갖고 있다. 생명 존중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의료계를 비롯한 국민의 합치된 의견 수렴이 필요한 이유다.
태아가 언제부터 생명이냐가 논란이나 대다수 헌법학자는 태아의 생명권을 인정하며 기본권의 주체로 본다. 생명권은 원초적인 것으로 다른 기본권에 양보할 수 없는 기본권이다. 임신으로 인한 여성의 곤경을 해결하기 위해선 국가나 사회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미혼모에 대한 인식의 변화와 지원의 강화, 사회의 성차별적·가부장적 사회구조를 개선하고 미혼부 등 남성의 책임 및 국가의 모성 보호 정책의 강화로 풀어나가야 할 과제다. 이를 낙태 허용을 통해 해결하려 하면 자칫 생명경시 풍조로 이어질까 두렵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시고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명령하셨고(창 1:28)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하게 하려고 이 땅에 왔다’고 말씀하셨다.(요 10:10) 인류 문명의 역사는 생명을 얻게 하고(양적 확장) 더 풍성하게 하려는(질적 확장) 것에 다름 아니며 한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말이 이를 말해 준다.
생명 보호는 창조 질서요 하나님의 명령이다. 이를 거슬러 생명을 축소하고 박탈하는 것은 하늘의 뜻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뤄진 것같이 이 세상에서도 이뤄지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낙태 문제도 검토돼야 한다.
이흥락 법무법인 로고스 변호사
약력=서울대 석사 및 박사.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 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 역임. 현 한국형사소송법학회·비교형사법학회 상임이사,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 법무법인 로고스 변호사.
[태아는 사람 낙태는 살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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