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참수 충격에 빠진 프랑스… “나도 교사다” 연대집회

입력 2020-10-19 04:02
프랑스 이블린주 콩플랑생토노린의 부아 돌느 중학교 정문에 17일(현지시간) 역사·지리교사 사뮤엘 프티의 죽음을 애도하는 조화가 쌓여 있다. 조화 위로 ‘나는 사뮤엘이다’라고 적힌 팻말이 눈에 띈다. 프티는 이슬람교 창시자 무함마드를 풍자한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 만평을 수업 자료로 썼다는 이유로 전날 길거리에서 체첸 출신 10대 청년에게 참수당했다. AP연합뉴스

프랑스에서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와의 싸움이 다시 시작됐다. 파리 근교의 한 중학교에서 이슬람교 창시자 무함마드를 풍자한 만평을 수업 교재로 사용한 교사가 길거리에서 참혹하게 살해되자 프랑스 시민들은 연대와 저항을 보여주기 위해 거리로 나섰다.

AFP통신은 18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북서쪽 콩플랑생토노린에서 중학교 역사교사 사뮤엘 프티(47)가 참수당한 사건과 관련해 프랑스 전역에서 집회가 잇달았다고 보도했다.

프티는 지난 5일 수업 시간에 ‘언론의 자유’에 대해 설명하면서 프랑스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의 무함마드 풍자 만평을 보여줬다는 이유로 지난 16일 학교 근처에서 이슬람 극단주의자에게 참수당했다. 샤를리 에브도는 2015년 무함마드를 만평 소재로 삼았다가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표적이 됐고, 총기 테러로 편집장과 만평가 등 12명의 목숨이 희생됐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용의자인 러시아 체첸 난민 출신 압둘라크 안조로프(18)는 범행을 저지른 뒤 “알라는 위대하다”는 뜻을 지닌 쿠란 구절을 외쳤다. 안조로프는 사건 직후 트위터에 목이 잘린 시신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출동한 경찰은 안조로프가 흉기를 내려놓으라는 명령에 불응하자 사살했다.

이날 오후 파리 레퓌블리크 광장을 비롯해 리옹, 툴루즈, 스트라스부르, 낭트, 마르세유, 릴과 보르도에서는 일제히 집회가 열렸다. 장미셸 블랑케르 교육장관은 프랑스2 방송에 “집결하고 연대하고 국가적 화합을 보여주는 게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면서 시위 참여를 촉구했다.

프랑스 이블린주 콩플랑생토노린 부아 돌느 중학교 인근에서 17일(현지시간) 교사들이 전날 살해된 이 학교 교사 사뮤엘 프티를 추모하는 의미로 하얀 꽃과 검은색 팻말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팻말에는 “나는 교사다. 나는 표현의 자유를 옹호한다”는 뜻의 프랑스어 문구가 적혀 있다. EPA연합뉴스

프티가 참수된 학교 앞에는 추모의 의미로 흰색 장미를 헌화하는 학생과 교사, 학부모들이 줄을 이었다. 일부는 ‘나는 교사다’ ‘나는 사뮤엘이다’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기도 했다. 이는 2015년 샤를리 에브도 테러 규탄 구호였던 ‘나는 샤를리다’를 떠오르게 한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교사들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교육을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장레미 지라르 프랑스 중등교사노조 위원장은 성명을 통해 “많은 교사가 슬픔에 빠져 있지만 위축되지 않겠다. 우리는 표현의 자유를 계속 가르치겠다”고 밝혔다.

사건 당일 현장을 방문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이번 사건을 이슬람 테러리스트의 공격으로 규정하고 “우리의 동지 한 명이 표현의 자유, 믿음과 불신의 자유를 가르쳤다는 이유로 살해됐다. 우리는 시민으로서 함께 단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건의 배후가 있는지 여부는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프랑스 경찰은 안조로프의 가족 외에도 학부모 등 6명을 추가 체포해 조사 중이다. 이들은 프티가 수업시간에 무함마드 만평을 보여줬다는 이유로 프티와 소송전을 펼치는 등 갈등을 빚다 그의 신상을 유튜브에 공개했다.

경찰의 위험인물 리스트에도 없었던 안조로프는 이 유튜브 영상을 보고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추정된다. 이해갈등 당사자도 아닌 제3자가 유튜브에서 프티의 신상을 보고 범행을 저질렀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외신들은 “일상으로 스며든 테러에 대한 공포가 다시 고조되고 있다”고 짚었다.

이번 사건은 지난달 2일 파리에서 샤를리 에브도 테러 관련 재판이 시작된 가운데 벌어졌다. 재판 시작 당일 샤를리 에브도는 무함마드 풍자 만평을 다시 실은 잡지를 발행했고, 20여일 뒤 샤를리 에브도 사무실 근처에서 2명이 흉기에 찔리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