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외국 기업과 개인을 제재하는 수출관리법을 오는 12월부터 시행한다. 중국 기업에 대한 미국의 압박에 ‘맞불’을 놓은 것으로 보이지만 한국 기업도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회는 지난 17일 열린 22차 회의에서 국가안보와 관련된 물품, 기술, 서비스를 수출할 수 없도록 한 법안을 통과시켰다. 미국이 국가안보 위협을 이유로 중국의 통신장비업체 화웨이와 메신저 위챗의 모기업 텐센트 등을 압박하는 것처럼 중국도 미국 기업을 제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수출 통제 대상은 대량살상무기와 운반시설 관련 물품, 핵·생화학무기 등 테러 용도의 물품이다. 법 자체는 군수품 수출 통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국가안보’와 ‘데이터’가 명시돼 해석하기에 따라 일반 기업도 얼마든지 제재 대상에 오를 수 있다.
수출 통제 품목은 중국 국무원과 당 중앙군사위원회가 결정한다. 중국 당국은 국가안보와 이익, 수출 국가 및 지역, 수출업체의 신용기록 등을 따져 심사하는 만큼 정치적 판단이 가능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중국 당국의 허가 없이 통제 품목을 수출하면 벌금, 영업정지, 수출자격 박탈 등의 처벌을 받는다. 수출관리법은 부칙에 ‘어떤 국가의 수출 통제 조치가 중국의 안전과 이익을 해치는 경우 중국도 그 국가에 대해 적절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못 박았다.
중국은 1990년대 이후 6개의 수출 관련 규제를 마련했지만 이를 총괄하는 법안이 제정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블룸버그통신은 “중국이 미국의 제재에 맞서 보다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법적 틀을 갖추게 됐다”고 평가했다.
중국은 미국 기업을 겨냥한 제재망을 촘촘히 하고 있다. 중국 상무부는 지난달 중국판 블랙리스트인 ‘신뢰할 수 없는 실체’ 명단 작성과 관련한 규정을 발표했다. 중국의 주권과 안보, 이익에 위협이 되거나 중국 기업을 차별하는 외국 기업을 제재하는 내용이다. 기업 명단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지만 애플, 퀄컴, 시스코, 보잉 등이 포함될 전망이다.
중국 기업이나 중국에 진출한 해외 기업의 특정 제품이 수출관리법의 적용을 받게 되면 이를 수입하는 한국 기업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수출관리법은 제재 대상 제품을 수입해 재가공해 제3국에 수출하는 경우에도 수출을 제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이 제재 대상에 오른 미국 기업의 부품을 수입해 재가공한 뒤 수출할 경우 제재를 받을 수도 있다.
베이징=권지혜 특파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