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기자] 비리조사 받는 공정위, ‘모르쇠 침묵’ 능사 아니다

입력 2020-10-19 04:06

경찰이 공정거래위원회 비리를 조사 중이다. 현직 국장 등 공정위 일부 직원들이 기업 측 인사를 통해 조사 정보를 넘겨준 혐의를 받고 있다. ‘브로커’ 역할을 한 공정위 민간자문위원 출신 윤모씨는 이미 구속됐고 구체적인 청탁 사건과 로비 내역까지 거론되고 있다.

그런데 공정위 입장은 “경찰로부터 수사개시 통보를 받지 못했다”가 전부다. 현직 국장이 조사를 받고 수사가 확대 양상인데도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오히려 공정위 일각에서는 경찰 수사에 정치적 의도가 있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전속고발권 폐지를 담은 공정거래법 개정 과정에서 “경찰도 담합 수사권한을 가져야 한다”는 경찰의 요구를 무시한 데 따른 보복성 조사라는 주장이다.

설령 이번 경찰 조사에 정치적 의도가 뒤에 숨어 있다 하더라도 공정위는 전·현직 간부들의 위법행위를 적극적으로 확인할 의무가 있다. 라임자산운용 펀드 사기사건 관련 수사 검사의 술접대 로비 의혹이 불거지자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은 경쟁이라도 하듯 내부감찰과 수사를 지시했다. 이에 비해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은 이번 로비 의혹이 자신의 임기 내 일어난 사안임에도 학술심포지엄 개최 등 가욋일에만 열중하고 있다.

지난달 부처 예산으로 개인용 냉장고를 구입한 공정위 한 고위간부(국민일보 9월 14일자 17면 참조)는 억울함을 호소하며 ‘셀프 내부 감사’를 신청했다. 내부적으로 하급직원과 ‘입맞추기’를 통해 결백함을 만들어낼 수 있는 사안이란 판단 때문인지 감사담당관실은 적극적으로 조사에 나서고 있다고 한다. 반면 조사 기밀 유출 로비라는 중대 사안에 대해서는 “경찰이 제대로 알려주지 않아서 아는 바가 없다”는 이율배반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공정위는 이제라도 이번 조사와 관련된 사실관계를 명확히 파악해 잘못한 것이 있으면 반성하고 재발방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불공정행위를 저지른 기업에 막대한 과징금을 부과하는 기관은 청렴과 도덕성이 생명이다. 제 눈에 들보는 놔두고 남의 눈에 티끌을 문제삼을 순 없는 일 아닌가.

세종=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