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국민일보는 사회부와 산업부가 협력해 ‘2020 가을, 대한민국 전월세 리포트’라는 기획을 보도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기사는 14일자 1면에 내보낸 단독기사 ‘전세 제비뽑기’였다. 전셋집 하나에 9개 팀이 줄을 서서 집 내부를 둘러봤고, 계약은 제비뽑기로 이뤄졌다는 기사다.
당시 서울 가양동 한 아파트에서 전셋집을 보기 위해 무려 10여명의 사람이 줄을 섰다는 믿기지 않는 제보가 전날 왔었다. 사회부 기자가 확인을 해보니 사실이었다. 그 전셋집을 중개한 사람조차 “이런 경우는 우리도 처음 보는 일”이라고 했다. 13일자 1면 기사 ‘집 본 뒤 전세계약? 지금은 계약금 쏘고 집 보는 시대’도 기억에 남는다. 이 두 기사 모두 최근 부동산 시장에서 전세 매물의 씨가 마르고 가격도 천정부지로 올랐기에 벌어진 일을 다뤘다.
사실 이런 현상이 올 거라는 것은 정부·여당이 7월 말 ‘임대차 3법’을 시행할 때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임대차 3법으로 당연히 전세 매물은 줄어들고 물건이 희소해지니 가격이 급등할 것이라는 건 중학생들도 알 수 있는 기본 상식이다. 본보 기자들이 현장을 취재해본 결과 상황은 더 심각했다. 지금 전세 파동에 이어 집값이 또다시 오를 조짐도 보였다. 강남3구나 ‘마용성’뿐 아니라 수도권 전역으로 아파트값 상승 지역이 더 넓어질 가능성이 큰 것 같았다. 기자들이 만난 세입자들의 공통된 반응은 “‘영끌’을 해서라도 집을 샀어야 했다”는 것이었다. 마포에 사는 한 시민은 지난달 임대인과 재계약을 맺었지만 요즘 주말마다 경기도 아파트 매물을 찾으러 다닌다고 했다. 경기 일부 지역은 전셋값이 집값을 추월한 단지도 있다.
하지만 정부와 여당은 천하태평이다. 정부 고위층은 시간이 해결해 줄 것처럼 말하고 있고, 여당 의원들은 전 정권 탓에 더해 전세를 사회악으로 여기는 발언을 해댄다. 서울 지역 전셋값이 68주 연속 상승세라는 뉴스는 보이지도 않나 보다. 일반 서민들이 다달이 적게는 수십만원씩 돈이 빠져나가는 월세보다는 전세금 자체를 나중에 목돈으로 쓸 수 있는 전세를 선호한다는 사실은 전혀 이해하려 하지 않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2020 가을, 대한민국 전월세 리포트’에서 만나본 서민들의 인내심은 서서히 ‘임계점’에 다다르고 있었다. 특히 청년층에선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이라는 자조와 함께 정부에 대한 불신과 분노가 심상치 않았다.
따라서 당정청의 전면적 반성과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 먼저 더불어민주당이 바뀌어야 한다. 민주당은 지난 7월 야당과 시장의 반발 속에서 임대차 3법을 다수의 힘으로 통과시켰다. 다른 정치적 사안들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렇게 서민들에게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사안에 대해선 정파적 이해관계를 따지지 말았으면 한다. 민주당이 이전부터 매일 떠들어댄 것이 ‘서민을 위한다’는 것 아니었나. 청와대는 궤도 수정과 함께 이렇게 부동산을 난장판으로 만든 고위 관료들을 물러나게 해야 한다. 특히 부동산을 이념의 논리로만 판단하는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직을 내려놓는 게 맞는다고 본다.
사족으로 최근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전세 난민’이 됐다고 한다. 경기 의왕 아파트는 팔기 어려워졌고, 살고 있는 마포 아파트 전셋집에선 나와야 한단다. 하지만 서민들은 그를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높으신 분이니 새로 전세 잡기 쉬울 것이다. 정 안 된다면 세종에 있는 장차관 관사를 무상으로 쓰면 된다. 혹시 속으로는 이제 수도권 아파트 한 채를 지킬 수 있게 됐다고 좋아할 수도 있겠다. 고위 관료 1주택자 기조에 맞추기 위해 의왕 아파트를 내놨으나 매매계약이 불발될 처지가 됐으니 말이다.
모규엽 사회부 차장 hir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