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부터 착하다는 말을 참 많이 들었고, 학창시절엔 선행상과 모범청소년 장학금도 여러 차례 받았다. 그럴 때마다 이 세상은 사람의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만 보고 평가하지만 분명 선악의 심판자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대학생 때 지나가던 어떤 남학생이 던진 ‘하나님에 대해 알고 싶지 않으세요?’라는 한 마디가 계기가 돼 이 세상의 주관자가 누구인지 찾고 싶어 교회에 나갔다. 목사님의 ‘하나님은 영이시고 우리 마음까지 모두 보시는 분이십니다’는 말씀에 ‘아, 내가 찾던 진리가 여기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회개하라’는 말씀을 예수님께서 내게 직접 하시는 말씀으로 받으며 내 모든 초점은 회개에 맞춰졌다.
그날부터 작은 마음의 죄라도 짓지 않으려 무던히도 애를 썼다. 그러나 그럴수록 끝없이 마음에서 솟아나는 죄로 가득한 내 모습만 보였다. ‘이 상태로 죽으면 지옥일텐데 어떻게 하지?’ 지옥의 공포와 죄의 짐에 눌려 주위의 어떤 말씀과 권면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렇게 죄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깊이 빠져 허둥대다가 결국 탈모 증상까지 생겼다. 그러다 문득 ‘하나님이 진짜 있나? 천국과 지옥은 있나? 만약 없다면 이렇게 머리 쥐어뜯으면서 회개할 필요 없잖아?’ 이런 복잡한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내 신앙은 무너지고 공황상태가 됐다. 그러다가 어느 예배에서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성경과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믿었다’는 말씀이 들렸다. ‘살아나신 후에야 믿었더라? 그럼, 살아나기 전에는 안 믿었어? 그것도 수많은 이적을 3년간이나 직접 본 제자들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던 내 눈에 베드로의 삶의 모습이 보였다.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한 그가 도대체 무슨 일을 겪었기에 죽음을 불사하면서까지 예수를 전하게 됐을까? 순간 ‘베드로가 예수님의 부활을 진짜 보았구나! 제자들이 그걸 본 거구나. 그래서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했구나.’ 그 전율이 내게 그대로 전해지며 탄성이 터졌다.
그동안 내 믿음은 아무런 증거가 없었다. 그러니 아무리 열심히 해도 뿌리부터 흔들렸던 것이다.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다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드디어 이해되며 진심으로 아멘이 터져 나왔다. 부활로 예수님을 정확히 알게 되니 그 분의 말씀 또한 선명해졌다.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요한복음 16장 9절의 말씀으로 내가 회개할 죄가 무엇인지 정확히 보였다. 속이 뻥 뚫리며 그토록 눌렸던 회개의 말씀이 기쁨의 말씀이 됐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알게 됐다. 죄의 삯은 사망이다. 내겐 영원한 심판만이 남아있었다. 사형대 앞에 놓인 자의 마음이 들었다. 그때 바라본 십자가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성자 하나님이 내가 지은 죄를 담당하고 그곳에 매달리신 것이기 때문이다. 내 마음을 찢으며 외쳤다. “어찌할꼬, 어찌할꼬.” 회개하라는 하나님의 음성은 내게 죄와 율법으로부터의 자유함을 준 기쁜 소식인 동시에 자신의 아들을 내어준 하나님의 사랑의 음성이요, 죽기까지 순종한 예수님의 순결한 피의 제사요,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주라는 하나님의 선포였다.
예수님의 부활로 하나님께서 회개하길 원하시는 죄를 알고 기쁨의 회개를 하게 된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감격을 억제할 수 없다. 이 기쁜 소식을 날마다 전하는 사명자의 삶을 살아가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함옥희 성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