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신웅 (10) 비 새는 낡은 집 말끔히 수리해 준 출소자 형제들

입력 2020-10-19 03:06
출소자 형제들이 1996년 비가 새고 낡은 김신웅 장로의 기와집을 수리하고 있다.

1996년의 일이다. 두 달 전 출소한 이명석(가명)이 우리 집을 방문했다.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는 그에게 물었다. “너 왜 그래.” “장로님, 밖에도 비가 오고 방안에도 비가 옵니다.” 어두운 방 안을 둘러보니 방 한쪽에 비가 고여서 바닥이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천장에서는 빗방울이 똑딱거리며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명석이가 볼멘소리로 말했다. “수리를 하고 사시지 이런 집에서 어떻게 사십니까.”

나도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몇 번을 고쳐도 워낙 낡은 기와집이라 이제는 포기하고 산다.” 그리고는 이런 궤변을 늘어놓았다. “자다가 빗소리를 듣노라면 음악 소리 못지않으니 비가 새지 않는 안쪽에서 편안하게 자면 된다.” 그리고 잠이 들었다. 새벽 기도를 위해 맞춰놓은 자명종 소리에 깨어 일어났는데 그때까지도 명석이는 잠을 이루지 못한 채 깊은 상념에 잠겨 있었다. “이제 비도 그쳤으니 잠깐이라도 눈 좀 붙여라.”

새벽 기도회를 다녀온 뒤 함께 아침 식사를 한 후 명석이는 서울로 떠났다. 일주일쯤 지났을까. 왕진을 다녀오니 낯선 봉고차가 우리 집 앞에 서 있었다. 대문 안으로 들어서니 집안은 이사하는 집을 방불케 했다. 장롱과 책장 등 가구가 마당에 놓여있었다. 이게 웬일인가 싶어 봤더니 10여명의 출소자 형제들이 대청소를 한 뒤 기둥과 지붕에 페인트칠하면서 비 새는 곳을 수리하고 있었다.

“어찌 된 일이냐?” “장로님, 얘기 들었습니다. 비가 새는 집에서 주무신다고 해서 저희가 한마음으로 내려왔습니다.”

그날 서울로 올라간 명석이는 여기저기 흩어져 사는 출소자 형제들에게 일일이 연락했다. ‘비가 오는 안방에 태연히 잠을 주무시는 장로님이 너무 딱하니 시간을 내서 집수리해드리자’고 제안한 것이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빠듯한 일상이지만 그렇다고 어떻게 장로님을 비 새는 집에서 살게 내버려 둘 수 있겠느냐’며 이구동성으로 합의하고 만사를 제쳐두고 내려온 것이다.

형제들은 3일간 함께 숙식하면서 불면 무너져버릴 것 같은 우리 집을 새집처럼 말끔히 단장해놓고 생업의 터전으로 돌아갔다. 고마워서 점심이나 사 먹으라고 서너 푼이 든 봉투를 건네자 외려 정색을 하고 섭섭해하며 도로 봉투를 던져놓고 봉고차를 타고 떠나버렸다. 멀어져 가는 차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나도 모르게 눈에서 굵은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환갑을 앞두고도 내 소유의 땅 한 평이 없고 모아둔 돈도 한 푼 없으니 사람들이 ‘지금까지 뭐 하고 살았느냐’고 ‘인생 헛살지 않았느냐’고 핀잔을 줄 만했다.

하지만 이날 형제들의 따뜻한 사랑에 나는 세상에서 제일 큰 부자가 된 듯했다. 3일간 그들이 땀 흘리며 쓸고 닦은 깨끗하고 튼튼한 집 창문을 통해 눈 부신 햇살이 방안 가득히 쏟아져 들어왔다. 마음이 너무나 흐뭇하고 하나님께 감사한 하루였다.

정리=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