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나온 영화 ‘벌새’는 열네 살 ‘은희’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을 그린다. 어린이보다 크고 어른보다 작은 키로 겪은 가족, 친구, 사회에 대한 고민이 섬세하게 묻어난다. 그 즈음 세상을 알아가면서 같이 보게 되는 부조리와 혼란, 그 속에서 중2 소녀가 느끼는 고립감이 잘 드러나 있다. 영화에 등장하는 어른들 중 한문 선생님은 그녀의 유일한 숨구멍처럼 보인다. 사려 깊은 태도도 태도지만, 무엇보다 존중할 줄 안다. 그 시절을 지난 어른의 입장에서 ‘좋은 세상이란 결국 좋은 어른이 많은 곳이 아닐까’라는 자문을 남긴 영화였다.
현실에선 ‘좋은 어른’은 고사하고, 어른 자체가 보이지 않는다는 볼멘소리가 가득하다. 물론 이때의 어른은 어린이나 청소년을 양육하는 이만이 아니라, 조직이나 사회에서 정당한 권위를 가지고 따를 수 있는 이를 포함한다. 지금의 현실은 나이와 자리가 주는 힘에 기대 강압적인 목소리를 앞세우는 이들이 여전히 많은 한편에 ‘꼰대’라는 비아냥을 들을까봐 아예 입을 다무는 이들이 늘고 있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무작정 누르는 이와 지레 침묵하는 이 둘 모두 바라는 어른은 아닐 것이다.
지난달 출간된 ‘우리는 왜 어른이 되지 못하는가’(반비)는 이러한 현실에서 나름의 해답을 떠올려 볼 수 있는 책이다. 부제인 ‘일, 육아, 교육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이유’에서 유추할 수 있듯 ‘권위의 부재’를 오늘날 여러 사회적 문제를 관통하는 원인으로 지목한다. 탈권위, 자율이 강조되는 상황에서 시대착오적인 것 아닌가 하는 반문이 들 수도 있지만 권위에 대한 저자의 설명을 들으면 수긍이 가능하다. 저자가 말하는 권위는 힘과 복종에 방점이 찍힌 권력과 다르다. 대신 자발성과 신뢰에 기반한다. “권위는 자발적 복종을 만들어내는 내면화된 규범에 의해 작동한다. 어떤 집단이 같은 권위를 따른다는 것은 깊은 신뢰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는 뜻이다.” 권위 실종에 따른 결과로 각종 규제와 통제가 넘치는 ‘규제 설사병’을 드는 데서 알 수 있듯 저자가 말하는 권위는 강압과도 거리가 멀다. 권위가 사라진 빈 곳을 메우는 규칙들이 권력 및 강요된 복종에 의해서만 제 역할을 하고, 이는 다시 규칙을 불러오는 악순환에 빠진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특히 저자가 해법으로 제시하는 ‘수평적 권위’는 ‘하향식 권위’와도 다르다. 수평적 권위는 서로의 지식이 공유되는 수평적 집단에 의해 통제되는 것으로 일방적이지 않다. 이는 “(수평적 권위의) 지도자가 평등한 사람 중에 맨 앞에 있는 자”라는 말에서 단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또 수평적 권위에서의 권위는 “자리한 자리로부터 ‘자연적’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집단을 올바르게 대변할 수 있는 그의 능력에서 나온다”는 말에서 보듯 자리가 아닌 능력에 의해 뒷받침된다. 책을 읽고 나면 최근 국내의 양육 및 교육 상황 등이 겹쳐지며 저자의 해법에 적잖이 공감하게 된다. 특히 ‘옮긴이의 말’에 나오는 사례는 저자의 해법에 부합한다. 역자는 잠자는 학생을 방치하는 교사에 대해 정작 잠을 많이 잤던 학생이 “잠을 자는 것은 우리 마음이지만 우리를 깨우는 것은 선생님의 몫이잖아요”라고 했던 사례를 소개했다. 하지만 동시에 저자가 있는 유럽의 한쪽 끝 벨기에와 동아시아 끝에 있는 한국이 처한 상황이 어느 정도 시차가 있을 수 있다는 의문도 든다. 개인의 자율과 탈권위가 오래 전에 보편화된 유럽과 비교하면 한국은 여전히 경직된 분위기가 강하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저자가 쓴 표현을 빌리자면 한국은 상대적으로 ‘과거의 가부장적 피라미드에 기반을 둔 권위’의 그늘이 더 짙게 드리워져 있는 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김현길 문화스포츠레저부차장 h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