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가뒷담] 능력 있어도… 기재부의 ‘전 정권 사람’ 주홍글씨

입력 2020-10-16 04:06 수정 2020-10-16 14:14

전 정권 사람이라는 ‘주홍글씨’는 천형(天刑)일 수밖에 없는가. 승승장구가 예상된 기획재정부의 고위급 인사들이 전 정부에서 주요 직책을 맡았다는 이유로 잇따라 옷을 벗거나 해외행이 가시화되고 있다. 정치 외풍이 심해질 경우 인재의 유출과 공무원 사기 저하 현상은 갈수록 심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세종 관가에 높아지고 있다.

최근 정부 안팎에서는 방기선 기재부 차관보가 국제 기구로 파견될 것이라는 소문이 확산되고 있다. 방 차관보는 지난해 1월부터 각종 정책을 진두지휘하면서 차관 승진 가능성도 제기됐다. 그런데 여기까지가 한계라는 이야기가 솔솔 나오기 시작했다. 바로 그의 이력 때문이다. 방 차관보는 2014년 박근혜 정부 때 청와대 경제수석실 선임행정관을 역임했다. 당시 경제수석은 국정농단 사태의 한가운데 있었던 안종범이다. 한 관계자는 “방 차관보의 전 정권 경험이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얘기가 있다”고 말했다.

앞서 방 차관보 전임자인 이찬우 현 경남 경제혁신추진위원장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이 전 차관보는 2년10개월이라는 기재부 역사상 최장수 차관보 기록을 세웠다. 승진이 유력했던 이 전 차관보는 그러나 2018년 쓸쓸하게 기재부를 떠났다. 문재인정부 초기 주요 정책을 추진했지만, 전 정권에서 ‘차관보’로 승진했다는 게 당청 눈 밖에 났다는 얘기가 돌았다.

이를 바라보는 관료들의 마음은 무겁다. 방 차관보와 이 전 차관보는 정부 내 실력자로 통했다. 이 전 차관보는 일자리안정자금, 청년일자리대책 등 현 정부 소득주도성장의 뼈대를 만들었다. 방 차관보 또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 속에서 1~4차 추가경정예산, 한국판 뉴딜 등 각종 경기 대응 대책을 마련했다.

익명을 요청한 정부 관계자는 “능력이 있어도 전 정권 사람으로 찍히면 실무형으로만 쓰고, 승진을 시키지 않는 게 현 정권의 특징”이라고 비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관가에서는 현 정권에서 승진하려면 관료가 아닌 ‘당(黨)료’가 되어야 한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고 관가 분위기를 전했다.

세종=전슬기 기자 sgj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