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SK엔 ‘엄격’ - 현대차·LG엔 ‘느슨’… 공정위의 이중잣대

입력 2020-10-15 04:07 수정 2020-10-15 11:35

공정거래위원회가 삼성과 SK그룹의 총수일가 사익편취 제재에 착수했다. 반면 현 정부 들어 현대차와 LG그룹은 느슨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공정위가 그룹 지배구조 개선 진척도에 따라 4대 그룹에 대한 경쟁법 집행에 차별을 두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13일 공정위 등에 따르면 공정위는 SK텔레콤의 SK브로드밴드 부당지원 혐의에 대한 위법성을 확인하고 다음 달 중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 격)를 발송할 계획이다. 공정위는 SK텔레콤이 SK브로드밴드의 IPTV(인터넷TV) 판매를 장려하면서 오히려 리베이트를 SK브로드밴드에 지급한 것을 계열사 부당지원으로 잠정 결론 내렸다.

공정위는 또 최태원 회장의 반도체 소재업체 실트론 지분인수 과정에 대한 사익편취 위반 여부에 대한 검토를 진행 중이다. 이와 별개로 SK텔레콤이 SK플래닛에 인증서비스를 위탁한 뒤 수수료를 과다 책정해 지급한 의혹에 대해서도 조사하고 있다. 공정위 관계자는 “SK 위법행위는 복수의 건으로 보고 있다”면서 “이 중 1건은 연내 제재에 착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공정위는 삼성에 대해서도 전방위적인 압박을 펼치고 있다. 공정위는 삼성 웰스토리가 단체급식 사업을 하면서 계열사 간 내부거래를 통해 총수일가에게 수익을 몰아줬다는 혐의에 대해 최근 조사를 마무리했다. 공정위 또 다른 관계자는 “SK보다 삼성 제재가 먼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언급했다. 공정위는 이 건 외에도 삼성물산-제일모직 불법 합병 사건 등 현 정부 출범 이후 삼성을 지속적으로 압박하고 있다. 조성욱 공정위원장은 지난달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두 그룹의 조사와 관련, “의미 있는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비해 공정위는 현 정부 출범 이후 같은 4대 그룹인 현대차와 LG에 대해서는 관대하다. 공정위는 이날 비공식적으로 현대차 정의선 회장 취임과 관련해 “지배구조 개선 노력을 기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경쟁당국이 개별 기업의 인사에 대해 입장을 밝히는 것은 이례적이다. 그렇다고 현대차가 총수일가 사익편취 규제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국회에 상정된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핵심 계열사인 글로비스는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이 된다. 현대차는 이 규제를 피하기 위해 글로비스의 총수일가 지분을 29.99%로 맞추고 있다. 공정거래법 통과 전에도 현대차는 총수일가 부당지원 혐의로 조사가 가능하다. 하지만 현 정부 출범 후 공정위의 현대차 조사는 전무하다. 이를 두고 공정위 내부에서는 암묵적인 ‘현대차 가이드라인’이 존재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공정위 한 사무관은 “김상조 위원장 때 지배구조 개선 노력을 칭찬한 현대차 등에 대해서는 일부러 일을 만들지 말라는 분위기가 있다”고 말했다. 김 전 위원장이 “지배구조 개선의 모범적 사례”라고 말한 LG 역시 별다른 조사를 받지 않고 있다.

재계에서는 공정위가 4대 그룹에 대해 이중적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정무적 판단이 배제되어야 할 경쟁법 집행에서 대기업 지배구조 개선이라는 현 정부 정책 철학에 따르는 기업에 특혜가 있다는 것이다.

이에 공정위 고위관계자는 “현 정부 들어 상대적으로 제재를 많이 받은 일부 그룹이 불만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면서 “공정거래법 위반행위가 있으면 어느 그룹이건 막론하고 조사에 착수한다”고 해명했다.

세종=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