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그머니 흘러나오는 ‘집단면역’ 전환론

입력 2020-10-20 17:50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고 있는 가운데 집단면역을 비롯한 완화된 방역체계 전환에 대한 논의가 흘러나오고 있다. 집단면역이란 구성원의 약 60%가 감염병에 대한 면역성을 획득함으로써 면역성이 없는 개인이 간접적인 보호를 받게 되는 상태를 말한다.

중앙방역대책본부에 따르면, 감염경로 불분명 확진자 비율은 여전히 20% 내외를 오가고 있다. 특히 80대 이상 고령층 치명률은 21.5%로 높은 반면, 50대 이하에서는 1% 미만으로 격차가 벌어지면서 일각에서 적극 개입방식의 일명 ‘K-방역’ 전략을 재검토하자는 목소리가 나온다.

화두를 던진 전문가는 신종감염병 중앙임상위원장인 오명돈 서울대의대 교수다. 그는 최근 인터뷰에서 “방역을 모든 인구에 일괄로 적용하지 말고 취약한 그룹에 탄탄히 방역하면 어떤가. 백신이 언제 나올지 모른다면 이게 더 실현 가능하다”며 사실상 집단면역 방식의 방역완화를 시사했다.

공감의 목소리도 나왔다. 마상혁 경상남도의사회 감염병대책위원장(창원파티마병원 소아청소년과)은 “집단면역에 대해 100% 동의한다. 지금의 강한 방역체계는 한계가 있다”며 “계절인플루엔자의 경우 해마다 많은 사람들이 감염돼 사망하지만 전 국민을 대상으로 관리하지 않듯 코로나19도 방역제한을 대폭 풀어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집단면역’ 체계가 국내 의료현실과 맞지 않다는 지적도 높았다.

김신우 경북대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집단면역을 이야기하는 이들은 건강한 일반인과 고위험군을 만나지 못하게 하면 가능하다는 논리다. 그러나 노인과 기저질환자, 그리고 일반인을 명확하게 구분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완치 후 후유증까지 따져보면 집단면역으로 코로나를 극복하자는 것은 무모한 도전이다”라고 꼬집었다.

관련해 김 교수가 국내 완치자 576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온라인 설문 조사 결과에 따르면, 확진자 965명 중 879명(91.1%)는 피로감, 집중력 저하, 후각·미각 손실 등 1개 이상의 후유증이 있다고 응답한 것으로 확인됐다.

정기석 한림대성심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도 ‘집단면역 방식은 안 된다’고 선을 그었다. 정 교수는 “집단면역을 채택한 스웨덴의 사망자 비율을 우리나라 5000만 인구에 대입하면 약 3만명 정도의 사망자가 나온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 3만명의 사망을 감수할 수 있느냐”며 “문명사회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방식이다”라고 비판했다.

새로운 형태의 ‘일상생활 방역’ 전환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전병율 차의과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모든 접촉자를 조사하고 격리하는 지금의 체제를 지속하는 것은 반대다. 코로나19에 대한 정보가 쌓인 만큼 자연스럽게 일상방역으로 넘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아예 마스크를 벗어버리는 방식은 안 된다. 마스크 착용, 손 씻기 등 위생수칙을 개개인의 책임 하에 관리하도록 서서히 전환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전미옥 쿠키뉴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