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그룹 정의선 수석부회장이 그룹 회장에 취임했다. 정 신임 회장은 ‘고객·인류·미래·나눔’을 그룹의 혁신 지향점으로 제시하며 고객 중심의 미래차 시대를 열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20년 만에 총수 교체를 단행한 현대차그룹은 미래 스마트모빌리티 솔루션 기업으로의 변신을 본격화하며 새로운 여정을 시작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 현대모비스는 14일 각각 임시 이사회를 열어 정 수석부회장의 회장 선임 안건을 통과시켰다. 정몽구 회장은 명예회장으로 추대됐다.
정의선 회장은 영상 취임 메시지를 통해 “그룹의 모든 활동은 고객이 중심이 돼야 한다”며 “고객의 다양한 목소리에 귀 기울여 소통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기본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친환경적인 이동수단, 인류의 자유로운 이동을 위한 혁신적인 자율주행 기술을 개발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미래 핵심 기술을 확보하겠다는 포부도 드러냈다. 정 회장은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을 보유한 수소연료전지를 자동차는 물론 다양한 분야에 활용해 인류의 미래 친환경 에너지 솔루션으로 자리잡게 할 것”이라며 “로보틱스, 도심항공모빌리티(UAM), 스마트시티 같은 상상 속 미래 모습을 더욱 빠르게 현실화시켜 인류에게 한 차원 높은 삶의 경험을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사랑받는 기업이 되도록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정 회장은 정주영 선대회장과 정몽구 명예회장의 경영철학을 계승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정 회장은 “두 분의 숭고한 업적과 기업가 정신을 이어받아 국가경제에 기여하고, 더 나아가 인류의 행복에 공헌하는 그룹의 새로운 미래를 임직원 여러분과 함께 만들어 나가고자 한다”고 전했다.
‘정의선 시대’ 개막은 코로나19 확산 등으로 불안정한 경영 환경이 찾아오면서 앞당겨진 것으로 풀이된다. 전 세계 자동차업계가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신속한 경영체제 개편을 통해 미래차 시대의 성장 기반을 선도적으로 확보하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재계 안팎에선 정 회장의 경영 능력은 이미 검증됐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수석부회장 시절 고급 브랜드 제네시스 G70·80·90, GV80과 70(출시 예정) 등으로 라인업을 다양화해 그룹 브랜드 이미지 강화를 주도했다. 외국인과 여성 임원의 비율을 높이고 외부 인재를 수혈하는 등 혁신을 위해 과감한 인재 영입도 서슴지 않았다.
자율주행차 등 미래차 개발을 위한 적극적인 협업도 이어왔다. 현대차그룹은 올 3월 앱티브와 공동 설립한 자율주행 합작사 ‘모셔널’을 통해 2023년 ‘레벨 4’ 수준의 자율주행 기술을 상용화할 예정이다.
내년부터는 전기차 전용 플랫폼(E-GMP)을 적용한 신형 전기차를 연이어 출시한다. 이를 위해 정 회장은 최근 삼성, LG, SK의 총수들과 차세대 배터리 분야 협업을 논의하는 적극적인 행보를 보여주기도 했다. 아울러 수소산업 생태계를 미래 성장동력으로 판단하고 구체적인 실행 전략을 수립하고 있다.
정 회장은 전통적인 자동차 제조업에서 탈피해 미래차 기술을 확보해야 하는 것뿐만 아니라 당장 눈앞에 놓인 코로나19 위기를 돌파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올 초 확산된 코로나19 팬데믹 여파로 현대차와 기아차의 상반기 영업이익은 각각 29.5%, 47.7%씩 감소한 상황이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정 회장 취임은 미래성장의 기반을 확고히 다지고, 고객 중심 가치를 실현하며 조직의 변화와 혁신을 더욱 가속화하는 새로운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구인 기자 capta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