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끌해서 집 살걸” 전세 사라질까 걱정하는 세입자들

입력 2020-10-15 00:05
서울 가양동 한 아파트 단지에 13일 전세 매물로 나온 집을 보러 온 사람들이 집 앞에서 길게 줄을 서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가을 전세대란’이 벌어지기 전 전셋집을 구했거나 계약갱신청구권 카드가 남아 있는 세입자들은 2~4년 후의 전세시장을 예측할 수 없어 불안하다. 시중에 나도는 말처럼 몇 년 안에 전세제도가 사라질까 걱정돼 주택 매입을 다시 고민하는 세입자도 적지 않다.

지난 7월 경기도 성남 판교의 아파트에 전셋집을 구한 정모(31)씨는 최근 전세시장을 보며 안도와 불안감을 동시에 느끼고 있었다. 정씨는 14일 “우물쭈물하다가 계약을 한두 달 미뤘으면 집을 못 구할 뻔했다”면서도 “계약갱신청구권을 쓴다 해도 4년 후엔 전세 보증금이 훨씬 높아질 것 같아 불안하고, 당장 2년 뒤에 집주인이 실거주하겠다고 나오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벌써 걱정이 많다”고 말했다. 정씨는 6억원대에 전세로 들어왔지만, 현재 전세 호가는 9억원에 육박한다고 한다.

지난 1월 경기도 화성의 한 아파트에 전세로 들어간 주부 김재희(가명·35)씨는 초등학교 5학년인 아이를 생각하면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자녀를 인근 중학교에 진학시키고 싶지만 3년 후엔 엄청나게 오를 전셋값을 맞출 자신이 없어서다.

김씨는 “청구권을 쓰면 3년 정도 살 수 있으니 여유로운 소리 한다고 할 수 있겠지만 이곳에 2~3년만 살고 떠날 것도 아닌데 안심하기엔 너무 짧은 기간”이라며 “지금 주변의 전세난이 남 얘기 같지 않다”고 전했다. 김씨가 입주한 아파트 전세가 역시 지난 1월 대비 2억원이 올랐다.

세입자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계약갱신청구권을 쓰고 난 후 전셋집을 새로 알아봐야 하는 상황이다. 재계약 기간이 돌아왔을 땐 폭등한 전셋값도 부담스러운데 전세매물도 자취를 감춰 집을 구하지 못하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임대차 3법’ 시행 이전 집을 구한 세입자들은 올가을 전세난이 2~4년 정도 유예됐을 뿐이며 결국 ‘내 집 마련 과제’를 완수하지 못하는 한 주거 불안정에 대한 불안감은 계속될 것으로 우려했다.

이 때문에 국민일보가 만난 세입자들의 공통된 반응은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음)을 해서라도 집을 샀어야 했다는 것이었다. 정씨는 “돈을 모아 집을 사겠다는 마음으로 입주했지만 전세가와 매매가 모두 폭등하니 일할 마음도 생기지 않는다”며 “결국 집을 살 만큼 돈을 가진 사람만 돈을 더 벌고 없는 사람들은 계속 불안하게 살아야 한다”고 한숨을 쉬었다.

서울 마포구에 사는 40대 주부 이모씨는 지난달 임대인과 재계약을 맺었지만 경기도 고양 아파트 매물을 찾기 위해 주말마다 발품을 팔고 있다. 이씨는 “폭등하는 집값에 지금이 아니면 평생 집을 못 사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계약 기간 중에라도 좋은 매물이 나오면 부동산중개료를 물어주고 나갈 생각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씨가 알아본 아파트 단지도 지난 6월 이후 넉 달 사이 2억원 가까이 올랐다고 한다.

아파트 구입을 마음먹었음에도 이씨는 하루하루가 초조하다고 했다. 초등학생 자녀를 생각하면 매입 후 곧 입주해야 하는데 집주인이 실거주하는 매물은 전세 낀 매물에 비해 수천만원 이상 비싸기 때문이다. 이씨는 “2주 전 마음에 꼭 드는 집이 매물로 나왔는데 사지 못했다”며 “계약을 진행하려 했는데 집주인이 ‘세입자가 계약갱신청구권을 청구해 못 팔게 됐다’고 하더라”며 아쉬워했다. 이씨는 “아파트가 하루가 멀다고 가격이 오르니 점차 구역을 넓혀 알아보고 있지만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라고 토로했다.

정우진 기자 uz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