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인터넷이 수상하다. 뜨겁다. 너무 뜨겁다 못해 델 지경이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포털사이트가 네티즌의 분노로 가득하다. 그들은 좋게 말하면 ‘정의의 사도’요 나쁘게 말하면 ‘프로불편러’다. 논란이 되는 글에는 여지없이 불편한 네티즌들이 등장해 ‘폭풍 비난’을 퍼붓는다. 온라인 기사 댓글이나 커뮤니티·카페 등은 물론이고 인스타그램이나 트위터, 페이스북 같은 SNS도 두말하면 잔소리. 비교적 청정구역이었던 유튜브마저 분노의 물결로 넘실댄다.
이근 해군 특수전전단 출신 예비역 대위 얘기부터 해볼까. “너 인성 문제 있어?” “머리부터 발끝까지” 등의 유행어를 만든 주인공이다. 젊은이인데 이근을 모른다면? 그럼 ‘너 인성 문제 있어’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이근의 유명세가 그 정도다. 유튜브 예능 ‘가짜사나이’ 시즌1에서 교육대장으로 등장해 스타가 됐다. 깔끔한 얼굴에 슬림하지만 다부진 몸매, 중저음의 목소리에 초롱초롱 사슴 눈망울, 싱그러운 미소에 특유의 교포 말투까지 갖춘 이근은 가짜사나이 열풍을 타고 광고모델과 지상파 예능까지 진출하는 등 방송 연예계 블루칩으로 떠올랐다.
그런데 추석 직후 그를 둘러싼 추문이 쏟아졌다. ‘빚투’가 신호탄이었다. 채권자는 소송에서 이겼는데도 이근은 200만원을 갚지 않았다고 호소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근사할 것만 같았는데 200만원짜리 빚투라니. 이때까지는 그래도 ‘대깨근’(대가리 깨져도 이근)으로 불리는 응원파가 득세했다. 하지만 성폭력 전과가 드러나면서 상황이 돌변했다. “2017년 클럽에서 추행한 혐의로 벌금 200만원을 선고받았으나 사실은 추행하지 않았다”는 알쏭달쏭한 이근의 말을 믿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여기에 폭행 전과까지 추가되면서 네티즌들은 분노했다. 이근을 겨냥해 ‘갚자사나이’라며 손가락질하고 조롱하는 댓글이 ‘텍사스 소 떼 밀려오듯’ 쏟아졌다.
문제는 분노가 지나치다는 점이다. 역설적이게도 온라인상의 분노는 클릭으로 이어졌다. 이근을 다룬 온라인 기사는 연일 포털사이트 ‘많이 본 기사’에 올랐다. ‘이근’과 ‘가짜사나이’ 등의 키워드는 검색어 상위에 포진했다. 영업상 기밀이라 구체적인 수치를 밝힐 순 없지만, 본보의 내부 시스템을 보면 ‘이근 논란’ 기사 조회수는 ‘개천절 집회 차벽’보다 무려 10배 이상 많았다.
이근만 그런가? 더 있다. 요리연구가 겸 유튜버인 국가비는 자궁내막증 치료를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가 원성을 샀다. 2주 자가격리 기간 지인들을 불러 생일파티 영상을 찍어 올린 게 화근이었다. 방역수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것도 모자라 수술비를 아끼려고 한국을 찾았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인스타그램은 국가비와 ‘영국 남자’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그의 남편 조쉬의 행동을 현미경 들여다보듯 낱낱이 분석하고 비난하는 글이 오르는 등 쑥대밭이 됐다. 부부는 결국 수차례 사과글을 올리고 당분간 콘텐츠 제작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아무리 유명하다고 해도 그렇지, 유튜버들의 일탈인데 우리는 왜 이리 분노하는 것일까. 일본인 뇌과학자이자 인지과학자인 나카노 노부코는 2018년 펴낸 저서 ‘샤덴프로이데’에서 현대 인간이 ‘정의 중독’에 빠져 있다고 진단했다. 우리는 잘 모르는 누군가에게 인정받는 기쁨을 얻기 위해 잘 모르는 누군가를 겨냥해 집단이 정한 정의를 집행한다는 것이다.
북한군 총격에 숨진 공무원의 유족이 비난에 시달리고 있다. 대통령이 보낸 위로 편지에 유족이 실망했다는 보도가 나오자 “고마운 줄 알아야지”라며 악성 댓글이 이어진다고 한다. 분노를 다스리고 따뜻한 위로를 남겼다면 어땠을까. 전세 역전의 대인배가 되지 않았을까. 아쉽다.
김상기 콘텐츠퍼블리싱부장 kitt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