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분 마스크 안 쓰고 인터뷰하네요.’
지난달 기사화했던 라이더유니온 박정훈 위원장의 인터뷰에 달린 댓글 중 하나였다. 마스크를 안 쓴 배달원은 질겁하면서 마스크 쓰고 배달음식을 받는 손님은 없다는 그의 말이 마뜩잖았나 보다 짐작하면서도 계속 마음에 남았다. 그에게 사진촬영을 위해 마스크를 벗어 달라고 요청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인터뷰 주인공의 얼굴이 궁금하기보다 마스크를 안 쓴 얼굴에 불편함을 먼저 느끼게 된 건가 싶은 생각 때문이었다.
드라이브스루 진료소 아이디어를 최초로 제안한 김진용 인천의료원 감염내과 과장은 TV 강연에서 우리나라가 미국과 유럽에 비해 코로나19 피해가 적은 중요한 이유 중 하나로 ‘KF94 마스크를 전 국민이 썼다는 것’을 꼽으며 우리는 마스크에 대한 거부감이 없는 나라라고 말했다. 황사와 미세먼지로 다년간 마스크 쓰기에 단련됐기 때문 아니겠느냐는 웃픈 말을 덧붙였다.
그렇다면 차도르나 니캅, 부르카로 평소에도 얼굴과 몸을 가리는 이슬람 여성들이 코로나19 시대에 가장 불편함이 적은 사람들일까. 서울 생활을 글로 옮긴 ‘한국에 삽니다’로 2016년 콜롬비아 소설문학상을 수상한 안드레스 솔라노의 새 책 ‘열병의 나날들’에서 이런 대목을 발견했다.
‘그가 이슬람교도인 걸 알아본 것은, 아내로 보이는 사람이 장바구니를 들고 그의 뒤를 따라 걷고 있었기 때문인데, 머리부터 발끝까지 니캅을 쓰고 있었다. 온몸이 가려져 있고 눈 부분만 뚫려 있는데, 오렌지와 오이를 고르는 손에도 장갑을 끼고 있었다. 저 여자와 그녀의 삶에 대해 생각한다. 요즘 같은 삶을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유일한 사람일 수도.’
우리가 열심히 마스크를 쓰고 있다는 것은 설문조사로도 확인된다. 매달 ‘코로나19 국민위험인식조사’를 실시하고 있는 유명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팀이 지난달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외출 시 마스크 쓰기’는 여러 생활방역 수칙 중에서 항상 실천했다는 응답자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마스크 쓰기가 85.9%였던 것에 비해 ‘기침예절 준수’ 55.9%, ‘다중시설 이용 자제’ 43.3%, ‘외출 자제’ 31.3%에 그쳤다. 같은 조사에서 코로나19라는 말을 접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이나 이미지를 물었더니 ‘마스크’를 꼽은 사람이 ‘전염·감염’에 이어 두 번째로 많았다. 유 교수는 “마스크는 막아주고 보호해주는 방패라는 긍정적 의미를 갖는다”고 설명했다.
반면 독일 프랑스 오스트리아 스위스 등 유럽은 물론 미국과 캐나다를 비롯해 세계 곳곳에서 마스크 의무 착용을 거부하는 시위가 일어난다는 보도가 끊이지 않고 들려온다. 이렇게 마스크를 대하는 상반된 태도를 두고 문화적 차이 때문이라는 해석이 많다. 웃음을 나타내는 우리나라 이모티콘 ‘^^’과 서양의 이모티콘 ‘:)’을 예로 들면서 동양은 눈으로 감정을 표현하고, 서양은 입으로 감정을 드러낸다는 설명이 그렇다. 그런데 시위대들이 마스크를 재갈에 비유하면서 ‘방역수칙은 파시즘’ 같은 주장을 펴는 것을 보면 개인의 자유에 대한 인식이 사람마다 국가마다 문화마다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영어사전에서 ‘mask’를 검색해봤다. 마스크, 가면 또는 탈, 얼굴 마사지용 팩, (본심을 가리는) 가면이라는 네 가지 설명이 떴다. 코로나19가 더 길어지면 마스크의 다섯 번째 뜻으로 ‘(바이러스를 막아주는) 방패’가 추가될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자유를 제한하는) 재갈’도 같이 오르려나. 코로나로 시작해 코로나로 저물어 가는 올해, 타임캡슐을 만든다면 가장 먼저 넣을 것은 마스크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