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혁 전 키움 히어로즈 감독이 돌연 사퇴한 배경에 구단 이사회 허민(사진) 의장의 과도한 개입이 있다는 의혹이 불거지고 있다. 허 의장이 구단 선수들을 자신의 캐치볼에 동원한 것이 알려지면서 지위를 이용해 선수단을 사유화 했다는 비판이 터져나오고 있다.
손 전 감독은 지난 8일 준플레이오프 직행이 가능한 프로야구 정규리그(KBO리그) 3위에서 잔여 일정을 12경기 남기고 지휘권을 내려놨다. 구단은 ‘성적 부진으로 인한 자진 사퇴’라고 밝혔고, 손 전 감독은 “아직 역량이 부족해 채울 것이 많다”고 말했다.
하지만 키움 구단 안팎을 들여다보면 손 전 감독의 사퇴 사유를 ‘스스로의 결단’만으로 설명하기란 어렵다. 팀을 포스트시즌 가시권으로 올려놓은 사령탑이 성적 부진을 이유로 사퇴한 것이 너무 이례적이어서다. 키움 구단 핵심 관계자는 13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손 전 감독은 부상 선수가 많고 외국인 선수가 부진한 상황에서 잘 버텨왔다”며 “손 전 감독이 ‘힘들다’는 표현을 자주 했다. 성적 때문이라고 하기에는 조심스럽고,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애매하게 말했다.
하지만 손 전 감독의 사퇴 배경을 허 의장의 ‘구단 사유화’ 의혹에서 찾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허 의장이 지난해 1월 키움의 1군 간판 선수들을 불러 캐치볼을 하고, 자신의 너클볼 구위를 평가해 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드러나 논란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또 지난해 2월엔 미국 애리조나주에 꾸린 키움 스프링캠프 평가전에서 허 의장이 실전 등판해 프로 선수들을 상대로 2이닝을 던지는가 하면 같은 해 6월에는 퇴근하던 2군 선수들을 모아 자신과 ‘야구 놀이’를 강요한 것도 알려졌다. 이에 대해 키움 구단은 “2군 일부 선수들이 퇴근 후 훈련 외적인 시간에 허 의장이 너클볼이 어떤 것인지 궁금하다고 해서 진행됐던 것으로 안다”고 해명했다.
허 의장의 야구철학도 논란을 확대시켰다. 키움은 손 감독의 후임으로 김창현 퀄리티컨트롤 코치를 감독대행으로 임명했다. 김 감독대행은 프로 선수 출신이 아니라 데이터 분석에 특화된 전력분석원 출신이다. 야구인 출신의 기존 코칭스태프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야구계에서 나올 수 밖에 없다.
앞서 한국시리즈 준우승 이후 재계약이 유력했던 장정석 전 감독은 손 전 감독(당시 SK 투수코치)을 수석코치로 앉히라는 허 의장의 지시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경질됐다. 허 의장은 자신이 추천했던 손 전 감독을 감독으로 임명했지만, 1년도 되지않아 감독이 다시 교체되게 됐다.
손 전 감독의 갑작스런 사퇴는 코치진과 선수들에게 충격을 안겼다. 홍원기 수석코치는 “손 전 감독의 사퇴 발표 직후 나도 사표를 냈다”며 “그런데, 구단에서 반려해 지금은 시즌 종료까지 선수들이 흔들리지 않도록 하는 중이다”고 말했다. 야구인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이순철 SBS 해설위원, 김인식 전 야구대표팀 감독은 손 전 감독의 사퇴에 대해 “야구를 우습게 보는 것”이라며 키움의 처사를 강하게 비판했다.
키움은 “이사회 의장이 사무실에 출근하지도, 경영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이사회 의장은 구단 경영을 감시·감독하고 투명성과 객관성을 강화할 뿐 구단주는 아닌 만큼 경영에 개입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감독 선임권을 부여한 의장의 권한을 보면 키움의 해명은 쉽게 납득되기 어렵다. 허 의장이 최측근으로 영입한 하송 부사장은 2019년 히어로즈 구단의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더욱이 허 의장은 횡령 배임 혐의로 실형(징역 3년 6개월)을 받고 복역 중인 이장선 전 키움 대표가 세운 인물이다. 이 전 대표가 실형 선고 후 한국야구위원회(KBO)에서 영구 제명됐지만, 키움의 대주주로서 구단 운영에 개입한다는 주장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김용현 기자 fa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