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을 이겨내는 새로운 각오로 행복한 가정을 이루며 훌륭한 사회인이 되시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오늘을 계기로 멋진 인생 2막을 시작해 주시길 당부드립니다.”
1991년 가을 부산의 한 예식장에서 뜻깊은 결혼식이 열렸다. 범죄를 저질러 교도소에서 복역을 마치고 출소한 A씨 등 6명의 남편과 6명의 아내가 그동안 미뤄왔던 결혼식을 함께 올렸다. 주례가 성혼선언문을 낭독하자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들은 감정이 복받쳐 눈물을 훔쳤다. 부부들을 대표해 A씨는 “가정을 꾸리게 된 만큼 책임감을 갖고 정말 열심히 살겠다”고 다짐했다.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 부산지부연합회가 출소자들을 위해 마련한 합동결혼식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와 195쌍의 부부가 웨딩드레스와 턱시도를 입었다. 연합회는 어려운 형편에 결혼식조차 올리지 못한 채 부부의 연을 맺고 있거나 새로 가정을 꾸리려는 출소자들을 지원한다.
선정된 대상자는 아무런 준비가 필요 없다. 그저 두 사람의 몸과 마음만 오면 결혼식은 진행된다. 예식장 선정에서부터 드레스, 예식비용 등을 모두 연합회가 도맡아 준비한다. 부족한 세간살이를 채워 넣는 일도 지원한다. 올해 합동결혼식은 오는 22일 부산의 한 예식장에서 진행할 예정이다.
연합회를 이끄는 정분옥 회장은 “30여년간 출소자들을 돌보면서 결혼만큼 이들에게 새 삶의 희망을 주는 일은 없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결혼식을 올린 출소자가 가정을 꾸리고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가족이 한 사람의 인생에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고 했다. 정 회장은 “결혼을 하고 자녀를 출산한다는 것 자체가 잘 살겠다는 약속”이라며 “그 큰 힘은 낮은 재범률과 안정적 사회 복귀에서 잘 드러난다”고 설명했다. 그는 “죄지은 사람, 즉 나쁜 사람을 왜 도와주냐고 비난을 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사회적 냉대 속에 자립에 실패한 출소자들이 또다시 죄를 저지르는 악순환이 이어진다면 그 피해는 그들을 꺼린 우리 사회로 고스란히 되돌아온다. 더 따뜻한 관심을 가져 달라”고 했다.
정 회장의 도움은 결혼식에서 끝나지 않았다. 그들에게 일자리를 마련해주고 가정을 꾸려갈 수 있는 각종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한국갱생보호공단 부산지부 여성후원회도 맡고 있던 정 회장은 2006년 10월 부산 연제구 다이아몬드호텔 리젠트 레스토랑에서 부산 최초로 불우출소자를 돕는 ‘사랑의 일일찻집’을 열고 수입금 전액과 기부금 전액을 취업을 위한 기술교육비 등으로 지원했다.
이외에 장학사업도 벌이고 있다. 지난 89년 거주지였던 부산진구에서 지인의 소개로 BBS 부산중고등학교를 알게 된 뒤 불우한 어린이를 도울 수 있다는 이유 하나로 학교운영위원회에 가입했다. 이 학교는 배움의 기회를 놓친 근로 청소년과 성인을 대상으로 고입·고졸 검정고시 과정 교육을 제공한다. 정 회장의 운영위 합류로 학교 교육 여건은 매년 나아졌다. 학생 수도 100여명에 달해 매년 30여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그는 92년 아예 학교장으로 취임해 본격적인 장학사업을 펼쳤다. 교장 취임 후 28년간 BBS 부산중고교 재단에 출연한 사재는 10억원을 훌쩍 뛰어넘는다. 2004년 9월 부산지역 제1호 대안학교인 다온학교(구 양정중학교)도 운영하게 됐다. 다온학교는 부산지역 중·고등학교 부적응 학생을 대상으로 수업한다. 다온학교는 올해 14명이 졸업했다.
정 회장은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은 대학 가서 공부한다는 건 엄두도 못 냈었는데 일단 우리 학교 졸업생이 대학에 합격하면 학비 전액을 준다”면서 “대학에 진학한 뒤 후배들 지원을 위해 강의하러 온 것을 볼 때 큰 보람을 느겼다”고 말했다.
BBS 부산중고등학교의 BBS(Big Brothers and Sisters Movement)는 20세기 초 미국에서 시작된 비행 청소년 선도운동이다. 20세 초반부터 미국 각지에서 전개된 이 운동은 60년대 중반 동명목재그룹 고 강석진 회장에 의해 부산에서 시작돼 전국으로 확산했다. 현재 청소년 직업교육 형태로 남아 있는 곳은 전국에 몇 군데 있지만 중·고등학교 형태로 남아 있는 곳은 부산이 유일하다.
정 회장은 2005년 7월 ‘아픈 사람, 굶는 사람 없는 연제구 만들기’를 모토로 내건 사단법인 연제구이웃사랑회 이사장도 맡아 운영해 오고 있다. 이 사단법인은 홀몸노인, 고독사 위기가구, 소년가장 등 저소득 취약계층에 대한 생활 안전 지원을 펼친다. 이를 위해 연제구 지역 120가구에 매달 10만∼30만원을 지원, 지난 15년간 1만1000가구에 20여억원을 지원했다.
그는 청소년 선도의 공로를 인정받아 1995년 12월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또 양성평등사회 구현과 여성 권익증진에 이바지한 공로로 부산여성상을 받았고 부산시민산업대상, 노란리본봉사상 대상, 기획재정부장관 표창, 법무부장관 표창 등을 수상했다. 해마다 많은 상을 받았지만, 정 회장은 모범납세자상을 최고의 상으로 꼽았다. 부산 연제구에서 장연다이아몬드관광호텔을 운영하며 한국여성경제인협회 부산지회장을 맡았던 그는 “제 사업도 성실히 하면서 국가 발전에도 크게 이바지하려고 매일 최선을 다한다”며 말을 맺었다.
▒ ‘봉사의 아이콘’ 정 회장의 말 말
“어려운 이웃 없는 지역사회 만들면 곧 국가균형발전”
“봉사란 나보다 못한 사람을 도우려는 따뜻한 마음입니다. 남은 평생을 어려운 이웃에게 봉사하는 마음으로 살겠습니다.”
30대 나이에 사회봉사를 시작해 40여년간 자원봉사를 펼쳐온 정분옥(사진)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 부산지부연합회장은 부산을 대표하는 ‘봉사 아이콘’이다. 정 회장은 12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어려운 이웃이 없는 지역사회가 되는 것이 국가 균형발전 아니겠느냐”면서 “어릴 적부터 봉사를 천직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1980년대부터 부산지검 범죄예방위원으로 활동하며 빈곤층 범죄자들의 자립을 돕는 취업 지원 활동을 벌여왔다. BBS중고등학교를 20여년간 운영하고 있으며, 2004년 대안학교 위탁 교육기관인 부산양정중학교(현 다온학교)를 설립해 근로 청소년들의 학업을 돕고 있다.
사단법인 연제이웃사랑회를 설립해 불우이웃 돕기 봉사에 앞장섰고, 지역 기업인들로 ‘나눔 문화를 만드는 사람들’을 구성해 여성과 빈곤층을 위한 사회봉사를 해왔다.
시골에서 나고 자랐다는 정 회장은 어릴 적부터 배고픈 보릿고개를 넘으며 굶주리고 헐벗은 사람들을 돕기 시작했다. 당시엔 봉사로 생각하기보다 불쌍한 마음에 자신의 것을 내놨을 뿐이었다고 했다. 봉사는 결혼 후 본격화했다. 남편인 이맹근 ㈜장연 회장이 부산지역에서 운영하던 3개 사업체에서 벌어들이는 돈을 고스란히 불우 청소년들을 위해 쓰기도 했다.
낮에는 봉사, 밤에는 청소년 야학, 선도 활동 등 밤낮을 눈코 뜰 새 없이 보냈다고 했다. 덩달아 각 단체에서의 역할이 커지면서 모임 단장부터 회장, 고문까지 다양한 직책도 맡게 됐다. 왕성한 활동을 하는 지역 봉사단체에 정 회장의 이름 석 자가 없는 곳이 없을 정도다.
정 회장은 “봉사의 삶을 살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주고 응원해준 식구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면서 “앞으로도 출소자, 홀몸노인, 청소년 등 지역 불우 이웃들을 위한 봉사활동을 계속 펼쳐나가겠다“고 말했다.
부산=윤일선 기자 news8282@kmib.co.kr
[지역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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