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코너] 트럼프 시대 이후의 중국

입력 2020-10-14 04:05

며칠 전 중국인 지인이 ‘미·중 갈등의 핵심을 짚은 글’이라며 SNS 링크를 보내왔다. 중국의 저명한 국제관계 전문가 진이난 전 국방대 전략연구소장이 최근 장쑤성 지역의 비즈니스 포럼에서 한 강연이었다. 강연 제목은 ‘승자의 사유’. 중국 때리기에 열을 올리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재선이 중국에는 기회이자 축복이라는 내용이다. 그는 이렇게 주장했다. “우리는 쉽게 태만하고 만족하고 자화자찬한다. 그래서 트럼프 같은 상대가 필요하다. 옆에서 호시탐탐 트집 잡고 못살게 굴어 결국에는 우리가 결점을 고치고 변화하게 만든다. 트럼프가 4년 뒤 78세에 물러난다면 중국은 지금보다 더 강해질 것이다.”

중국이 다음 달 치러지는 미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을 바라는지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 당선을 원하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누가 대통령이 되든 미국의 반중 정책이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는 게 베이징 분위기다. 진 전 소장은 상황이 그렇다면 관점을 바꾸자고 한다. 그는 “작은 성공에는 친구가 필요하지만 큰 성공에는 적이 필요하다”는 말로 강연을 마무리했다.

중국이 트럼프 행정부의 전방위 압박에 대처하는 태도가 이러한 정신승리법이라면 다른 카드는 미국 변수 차단이다. 중국은 향후 5년간 적용될 경제발전계획인 14차 5개년 규획(2021~2025년) 제정을 앞두고 ‘쌍순환’을 띄우고 있다. 내수 경제를 키워 불확실성을 줄이면서 대외 경제도 함께 발전시킨다는 전략이다. 시진핑 주석이 지난 5월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에서 처음 언급한 뒤로 핫 키워드가 됐다.

그런 면에서 시 주석이 14일 중국의 첫 경제특구인 선전을 방문하는 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선전에는 미국이 제재 대상에 올린 화웨이, 텐센트 등 중국의 주요 기업이 포진해 있다. 중국은 홍콩과 인접한 선전을 중국식 사회주의 시범지역으로 건설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운 상태다. 선전은 홍콩, 마카오와 광둥성 9개 도시를 경제·기술 특구로 집중 육성하는 ‘웨강아오 대만구’(Greater Bay Area) 프로젝트의 중심 도시이기도 하다.

결과적으로 시 주석의 선전행은 미국의 압박 속에서도 중국식 발전 경로를 고수하겠다는 분명한 신호로 해석된다. 시 주석은 오는 26일 개막하는 중국공산당 19기 중앙위원회 5차 전체회의(19기 5중전회)에서 장기 집권을 위한 포석을 놓을 전망이다. 그로부터 1주일 뒤 미국의 리더십이 결정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과의 무역전쟁, 코로나19 확산 사태를 겪으며 공산당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한 것 같다. 그러나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입지를 높여준 건 다름 아닌 트럼프 대통령이다. 미국 우선주의를 내건 트럼프 대통령은 다자협정 탈퇴, 관세 부과, 반이민 정책, 코로나19 대응 실패로 국제적 고립을 자초했다. 그 틈을 중국이 파고들고 있다.

한때 중국이 민주화될 거라는 희망을 품었던 바이든 후보 역시 시 주석의 행보를 보고 기대를 접었다. 대중 강경 노선은 트럼프 대통령과 바이든 후보의 외교 정책 중 거의 유일하게 의견이 일치하는 부분이다. 다만 바이든 후보는 인권 문제에 방점을 찍고 있다. 무역과 첨단 기술, 이념에 이르기까지 전방위 갈등을 빚은 트럼프 시대와는 다른 대립 국면이 예상된다.

시 주석의 중국은 패권 확대 의지를 숨기지 않고 있다. 안으로는 민족주의, 애국주의를 자극하는 한편 밖으로는 공세적 외교를 펼치고 있다. 공산당 중앙위는 최근 장기집권을 위해 시 주석을 핵심으로 지도체제를 더욱 확고히 하라는 조례까지 만들어 배포했다. 중국은 지금 트럼프 시대 이후를 바라보고 있다.

베이징=권지혜 특파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