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몰 스텔라데이지호 대책위 “사고 원인 밝히려 싸우는 것”

입력 2020-10-17 04:03
허영주 스텔라데이지호 가족대책위원회 공동대표가 지난달 27일 오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침몰 원인 규명을 요구하는 항의 시위를 하고 있다. 스텔라데이지호 가족대책위원회 제공

하루아침에 가족을 잃은 기분을 상상해 본 적이 있나. 이틀 뒤 뱃일을 나간다는 동생은 고향 집을 찾은 누나 앞에 손수 잡은 숯불장어구이를 내놓았다. 누나는 그때 그 장어맛을 못 잊는다. 더는 장어를 입에 대지 못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잊고 싶지 않다.

2017년 3월 31일 그날 허영주(43)씨의 삶은 송두리째 뒤엉켰다. 동생이 배와 함께 사라졌다. 이름조차 생소한 남대서양 한가운데에서 벌어진 일이다. 14만t급 초대형 화물선 스텔라데이지호의 이등항해사였던 동생은 한국인 7명, 필리핀인 선원 14명과 함께 증발했다. 그저 앉아만 있을 수 없었다. 청와대, 국회, 외교부, 해양수산부, 서울 광화문 그리고 사고 해역을 관할하는 우루과이까지 갈 수 있는 곳은 다 찾아갔다. 그사이 평범한 직장인이던 허씨는 투사로 바뀌어 갔다.

국민일보는 16일 허씨와 만나 재난 피해자의 삶에 대해 들어봤다. 허씨는 현재 스텔라데이지호가족대책위원회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인터뷰 내내 눈시울을 붉히던 그의 바람은 거창하지 않았다. 한없이 착한 동생이 왜 희생당해야 했는지 밝혀내는 것 하나면 충분하다. 허씨는 포기할 수 없다.

-참사 당시의 기억은.

“그날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구속되고 세월호가 인양돼 목포신항으로 옮겨진 날이다. 오후 11시30분쯤 침몰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처음 폴라리스쉬핑(선사)으로부터 연락받은 건 16시간 뒤인 다음날 오후 4시쯤이다. ‘배가 침수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만우절이라 누군가의 장난이거나 보이스피싱인 줄 알았다.”

-믿기지 않은 일이 벌어졌다.

“세월호 참사 당시도 동생은 화물선을 타고 있었다. 너무 걱정돼 동생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63빌딩보다 큰 배라 침몰하려면 2박3일은 족히 걸릴 거라고 하더라. 당연히 배에서 탈출했을 줄 알았다. 남대서양 섬 지도를 구해보려고 내셔널지오그래픽 서울지사까지 찾아가고, 인근 섬 관리자 이메일 주소를 구글링해 수색을 요청하는 메일도 보냈다. 과거 바다에 표류한 생존자들 증언을 보면 거북이나 새를 잡아먹고 버텼다고 하더라. 새우 알레르기가 있는 동생을 걱정하며 1년을 보냈다.”

-지난해 2월 수심 3461m 심해수색에서 유해를 발견했지만 두고 왔다.

외교부 관계자와 면담하는 허 공동대표. 스텔라데이지호 가족대책위원회 제공

“애초 가족들은 유해 수습 가능성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해수부 관계자는 심해의 거센 수압 때문에 유해는 흔적도 없을 거라고 했다. 그런데 심해수색 전 업체 측 총괄책임자가 건넨 말이 이상했다. 유해가 발견될 수도 있다는 얘기였다. 당시 심해수색 선박에 탔던 가족이 직접 들은 말이었다. 알고 보니 업체 평가회 때 해경 측 참석자가 ‘유해가 발견되면 어떻게 할 건가’라고 물었고, 업체 측은 ‘그물로 수습하겠다’고 설명했다고 한다. 정부는 가족에게 단 한 번도 유해 수습 얘기를 꺼낸 적이 없었다. 업체 측은 ‘한국 정부와의 업무계약서에 유해 수습에 관한 내용이 없었다’는 입장이다.”

-침몰 원인도 미궁에 빠져 있는데 2차 심해수색에 대해서는 형평성 문제 등이 나오는데.

“심해수색의 목적은 침몰 원인 규명과 실종 선원 생사 확인이다. 어? 유해가 거기 있네? 그렇게 보고만 오는 게 생사 확인인가. 수습하고 분석해서 가족에게 돌려주는 게 생사 확인이다. 정부가 1차 가해자인 선사에 이어 2차 가해를 한 것이다. 정부는 구상권도 회피한다. 스텔라데이지호 주인은 돈을 아주 잘 버는 회사다. 100억원, 200억원은 아무것도 아니다. 왜 계속 정부가 가해자에게 봐주기식 행정을 하는 것인가. 예산을 낭비하라는 게 아니다. 원인 규명하고 잘잘못을 가려 선사에 청구하라는 얘기다.”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은.

“이렇게 싸우는 게 너무 길고 지치고 힘든 건 맞다. 하지만 최소한 왜 이런 사고를 당했는지, 그 원인을 정확히 밝히는 게 장남이자 막내, 그리고 엄마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 의식인 것 같다. 최소한 당당하고 싶다. 끝은 아무도 모르지만, 힘도 없고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지만, 적어도 내가 안 하면 누가 하겠나.”

-세월호 가족 같은 재난 피해자와의 연대가 큰 힘이 될 것 같다.

“지난 추석 무렵이 엄마 생신이라 케이크를 하나 샀는데 동생이 못 돌아왔는데 지금 이럴 때냐고 엄마가 호통을 치셨다. 세월호 가족들 앞에서 이 얘기를 꺼내니 다들 공감하더라. 대구지하철 참사, 삼풍백화점 참사 가족도 우리 모습과 너무 비슷하다. 특히 최근 성수대교 참사 가족이 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 ‘그때 좀 더 싸워 진상 규명이 됐다면 다른 재난이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라며 후회된다고 하더라. 그 마음이 너무 이해됐고, 지금 중단한다면 우리도 몇 십년 뒤 같은 얘기를 할 것 같다. 그러고 싶지 않다.”

-문 대통령을 향한 바람이 있다면.

“문 대통령님, 스텔라데이지호 참사는 취임 1호 민원입니다. 지난해 심해수색은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라는 의미가 큽니다. 가족들은 대통령님 임기 안에 침몰 원인을 밝히고 유해 수습을 위한 2차 심해수색을 꼭 해주시길 바랍니다. 올해 2차 심해수색을 위한 100억원 예산이 꼭 편성될 수 있도록 간절히 요청드립니다.”

박장군 기자 genera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