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어 아이큐가 궁금해 검색해보니 3, 높아봤자 10이라 한다. 붕어 아이큐를 검사하는 게 가능한 일일까 의문이 들지만, 인간에 비해 머리가 매우 나쁜 것은 분명하다. 낚싯바늘에 걸렸던 것이 분명한 붕어가 또 걸려서 올라오는 것을 보면 이건 의문의 여지가 없다. 기억력이 3초라는 말도 있다.
이 머리 나쁜 붕어를 낚기 위해서 낚시꾼은 온갖 노력을 한다. 붕어의 생리를 공부하는 것은 필수다. 계절에 따라 붕어가 어느 수심에 떠도는지, 어느 미끼에 반응하는지 경험 많은 낚시꾼에게 배운다. 자연 변화에도 밝아야 한다. 동풍인지 북풍인지에 따라, 저기압인지 고기압인지에 따라 붕어의 행동이 달라짐을 알아야 한다.
붕어는 아무 채비에나 물리는 것이 아니다. 토종 붕어와 떡붕어, 중국붕어, 향붕어 등에 따라 채비를 달리해야 한다. 채비하는 방법이 이 조사(釣師) 다르고 저 조사 다른데, 결론은 늘 “정답은 없고, 각자 취향에 따라 하면 됩니다”다. 초보 낚시꾼은 난감하다.
미끼 선택은 거의 카오스 상태다. 상품화된 미끼의 종류만 수백 종이다. 이를 배합하는 방법까지 따지면 수수만종의 미끼가 붕어에게 주어진다. 붕어를 잡는 인간이 낚시터에서 먹는 음식은 닭도리탕, 삼겹살, 제육볶음, 라면 등 몇 종 안 된다. 낚시터에서는 인간보다 붕어의 미각이 백배는 더 까칠하다.
낚시꾼은 붕어와 대화를 한다. “야, 이놈들아, 이제는 나와라” “엄마 아빠 어디 있니? 데리고 와” “잘 놀았다. 다음에 또 보자”. 아이큐 3, 높아봤자 10이라는 붕어는 평균 아이큐 100인 인간의 말을 알아들을 것이라고 낚시꾼은 믿는다. 내 말을 못 믿겠으면 주변의 아무 낚시꾼이나 붙잡고 물어보라. 붕어가 낚싯바늘에 걸려서 올라올 때 침을 뱉으며 욕을 한다는 증언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낚시꾼에게 붕어의 아이큐는 검토 대상이 아니다. 낚시란 인간과 붕어의 두뇌 싸움이 아니기 때문이다. 붕어는 물속 자신의 세계에서 자신의 ‘논리’대로 살 뿐인데, 낚시꾼이 붕어의 논리를 파악하려다가 붕어를 인격화하는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에이햅 선장이 고래에게, 노인이 청새치에게 보인 감정과 다르지 않다. 좁은 저수지에 사는 작은 붕어도 대해의 고래나 청새치와 같은 자연이며, 인간이 자연을 대하는 태도는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붕어는 원래 인간에게 낚이기 위해 존재하는 생명체가 아니다. 인간이 낚는 재미를 붕어에 붙였을 뿐이다. 붕어에 낚이는 인간은 없다. 공정한 게임이 아니다. 이 일방적 게임에 인간의 독주를 막기 위한 장치를 하나 두었다. 낚시꾼 전문 용어로 ‘정흡’이라는 것이다. 붕어는 미끼를 흡입한다. 이때 낚싯바늘도 함께 붕어 입안으로 들어가고 붕어가 뒤돌아서거나 위로 뜰 때 찌가 올라온다. 이 타이밍에 낚아채면 낚싯바늘이 붕어의 윗입술에 걸린다. 이 상태로 붕어가 올라오면 “정흡했다” 한다.
전통적 낚시꾼은 정흡을 한 붕어만 낚은 것으로 친다. 낚싯바늘이 아랫입술이나 입 밖에 걸려 있으면 붕어에게 미안함을 표시하고 바로 물속으로 돌려보낸다. 일방적 게임에서 낚시꾼이 붕어에게 보이는 최소한의 예의라고 할 수 있다.
인간끼리도 일방적 게임이 벌어진다. 검찰은 정교한 채비와 다양한 미끼를 가지고 있는 낚시꾼에 비교될 수 있다. 막강한 조직력을 가진 검찰의 수사를 받는 개인은 작은 붕어에 불과하다. 일방적 게임을 함에도 검찰은 낚싯대를 마구 휘두르며 훌치기를 시도한다. 걸리기만 하면 된다고 여긴다. 극우 정치집단과 언론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쑤시고 저렇게 쑤시며 인디언 기우제를 올린다. 낚시꾼으로 보자면 하수 중 하수다.
낚싯대 함부로 휘두르는 것 아니다. 낚싯바늘에 자기 몸을 거는 하수들도 많다. 낚시든 뭐든 정직이 고수의 길이다.
황교익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