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악마’ 돌아온 경기장, 형님 자존심 세웠다

입력 2020-10-13 04:05
12일 경기도 고양시 고양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축구 국가대표팀과 올림픽대표팀 간 친선경기에서 후반 9분 국가대표팀 이동경의 첫 골 후 동료 선수들이 함께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좋은 자리 구하려고 예매 열리기 1시간 전부터 기다렸어요.” 광주에 사는 축구팬 양승훈(23)씨는 12일 경기 시작 3시간 전부터 국가대표팀 점퍼를 입고 경기 고양종합운동장 관중석에 도착해 있었다. 대학 수업이 비대면으로 진행된 덕에 서울 누이 집에 머물던 그는 마침 대표팀 경기를 직접 볼 기회를 잡았다. 얼굴을 가린 마스크 사이에서 새어나온 목소리가 잔뜩 들떠 있었다.

한국 생활 8년째인 인도네시아 출신 직장인 나타니아(24)씨도 경기장을 찾았다. 평소 프로축구 K리그 울산 현대를 응원한다는 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 번지기 전까지 경기장을 자주 찾던 골수 축구팬이다. 성인대표팀에 뽑힌 울산 수비수 김태환을 좋아한다면서 “울산 선수들이 이번 경기에 워낙 많이 차출돼 보고 싶어서 왔다”고 했다.

축구 남자 성인대표팀은 12일 고양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스페셜 매치’ 2차전에서 후반 9분 터진 이동경의 선제골과 후반 막판 이주용과 이영재의 추가골로 올림픽대표팀(23세 이하)을 3대 0으로 이겼다. 방역당국이 이날부터 거리두기를 1단계로 전환해 경기장에도 관중이 입장했다. 공식 경기가 아닌 이벤트 경기이긴 했지만 올해 국내에서 열린 첫 유관중 대표팀 경기였다.

관중은 고양종합운동장 동문에서 현장 전화인증을 거친 뒤 입장을 시작했다. 전날 방역당국 발표에 따라 관중을 입장시키기로 급히 결정한 대한축구협회는 방역인원 120명을 경기장 곳곳에 배치했다. 관중이 앉을 수 없게 통제된 좌석에는 붉은 테이프를 둘렀고, 전염 위험을 줄이기 위해 통로 쪽 자리는 열지 않았다.

슈팅이 터질 때마다 어쩔 수 없는 탄성이 관중석에서 터져 나왔지만 대부분은 수칙에 따라 박수만으로 조용한 응원을 했다. 경기장 스피커에서 대표팀 응원가인 아리랑이 흘러나오자 관중은 노래 박자에 맞춰 휴대전화 불빛을 좌우로 흔들며 장관을 연출하기도 했다. 국가대표 응원단 붉은악마는 코로나19 사태에 헌신해온 의료진에게 감사를 전하며 ‘덕분에’ 현수막을 내걸었다.

협회 관계자는 “유관중 발표가 나오자마자 직원들이 경기장에 나와 관중맞이 준비를 했다”면서 “다만 현실적으로 입장권을 판매할 시간이 너무 부족했고, 현장 판매도 방역 탓에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협회는 경기 5시간 전인 오후 3시부터 입장권을 온라인으로 판매했다. 개방된 3000석 가운데 2075석이 들어찼다.

양팀의 선발 명단은 1차전과 크게 달랐다. 성인대표팀의 파울루 벤투 감독은 미드필더 손준호와 이동경, 수비수 권경원과 김태환, 골키퍼 조현우를 제외한 나머지 멤버를 모두 바꿨다. 올림픽대표팀 김학범 감독 역시 공격수 조규성과 조영욱, 미드필더 정승원을 제외한 모든 멤버를 바꿔 내세웠다.

성인대표팀은 1차전에 비해 안정적인 경기력을 보였다. 올림대표팀에서 ‘월반’한 이동준과 이동경이 함께 뽑아낸 선제골은 후방에서 길게 보낸 패스로 만들어진 교과서적 역습이었다. 실점 후 반격에 나선 올림픽대표팀도 후반 오세훈이 코너킥을 정확하게 머리로 받아 슈팅을 날렸지만 성인대표팀 골키퍼 조현우가 반사적으로 손을 뻗어 선방해냈다. 이후 성인대표팀은 안찬기 골키퍼의 실수를 틈타 이주용이 왼발 발리슈팅으로 두번째 골을, 경기 종료 직전 이영재가 세번째 골까지 넣으며 완승했다.

고양=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