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기업들이 하반기 정기 인사를 서두르고 있다. 내년 경영계획을 가능한 한 빨리 수립하기 위해서다. 코로나19로 큰 타격을 입은 유통업계가 가장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전자 등 제조업계는 인사 시점보다 신사업 경쟁력 강화에 초점을 둔 경영계획 조기 수립에 집중하는 분위기다.
재계에서는 전례없는 ‘8월 인사’로 세간을 놀라게 했던 롯데그룹이 사업 재편 등을 위해 조만간 추가 사장단 인사에 나설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롯데는 지난 8월 ‘2인자’로 불려온 황각규 부회장을 퇴진시켰다. 코로나19 여파로 주력 사업인 유통뿐만 아니라 롯데케미칼 등 석유화학까지 고전한 점이 조기 인사의 주요 배경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롯데 관계자는 12일 “올해 워낙 큰 위기를 겪어왔기 때문에 분위기가 썩 좋지 않다”며 “조기 인사 여부는 결정되지 않았지만 (인사가) 당겨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신세계그룹 정기 인사는 이르면 10월에 대규모로 이뤄질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과 정유경 신세계백화점 총괄사장은 지난달 어머니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의 지분 증여로 각각 이마트와 신세계의 최대주주가 됐다. 정 부회장과 정 총괄사장은 신속한 인사를 통해 경영 안정화 작업에 나설 것이란 예측이다.
4대 대기업의 한 임원은 “연말에 인사를 해서 내년 1월 1일자로 인사를 내면 내년 사업을 신속하게 추진하기 어렵다”며 “빨리 인사를 하는 것은 내년 경영계획을 꾸리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지난달 말 정기 인사를 한 한화그룹도 조기 인사를 통해 내년 사업계획 마련에 주력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는 올해 정기 인사에서 사업 부문별 대표이사 3명을 2년 연속 모두 유임시키며 안정을 택했다. 하지만 올해는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과 시스템 반도체, 폴더블폰과 5G 이동통신 시장 확대 등 신사업에 박차를 가해야 할 시점이다. 이 때문에 연말 정기 인사에서 변화를 통해 조직 혁신에 무게를 둘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지난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사법 리스크로 인사가 한 달여 지연됐지만 올해는 코로나19 외 큰 변수는 없어 보인다”고 했다. 인사가 늦어질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중공업과 디스플레이 부문의 경우 실적 부진 여파도 예상된다.
정기 인사를 없앤 현대차그룹은 지난 7월 임원 인사 이후 미래차 사업 위주로 대대적인 조직 개편을 했다. 지난주 임원 승진 후보자 면접을 실시한 LG그룹에서도 대규모 인사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LG화학에서 배터리 부문을 물적분할한 LG에너지솔루션(가칭)이 출범할 예정이기 때문에 관련 인사와 맞물려 인사 폭이 커질 수 있다.
올해 사업 부문별 부침이 비교적 컸던 SK그룹과 CJ그룹도 정기 인사를 통해 선택과 집중을 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올해 낮은 경영 실적은 코로나19라는 돌발 변수 탓으로 돌릴 수 있지만 내년은 코로나19가 상수이기 때문에 각 기업은 이에 대한 대비에 고심할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강주화 문수정 박구인 권민지 기자 r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