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풀 대로 부푼 서울 아파트 전세난은 연립·다세대·단독·다가구 등 거의 모든 형태의 주택 전셋값도 올려놓고 있다. 임대차 2법(계약갱신청구권제, 전월세상한제)이 시행되며 불안감에 사로잡힌 임대인들이 전세 매물을 거둬들이는 상황에서 아파트 전세 매물을 구하지 못한 청년층이 빌라(연립·다세대) 전셋집을 찾아 나선 결과다.
경기도 수원시 동탄신도시의 한 아파트 전세 입주민인 김모(31)씨는 최근 계약 만료를 두 달 앞두고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2년 전 전셋집을 3억원에 계약했지만, 지금은 주변 전세 시세가 5억5000만~5억6000만원대로 치솟았다. 그마저도 매물이 거의 없다. 현장 공인중개사들은 “최근 임대차 2법이 시행되면서 계약갱신청구권제를 염두에 둔 집주인들이 4년치 인상분을 미리 적용하면서 전셋값이 크게 올랐다”고 귀띔했다.
김씨는 기흥, 수지 지역의 2억~3억원대 빌라나 연식이 오래된 아파트도 함께 알아보고 있다. 조건 좋은 아파트 전세만 바라보고 있다가는 집을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미 주택 전셋값도 올라 김씨가 생각하는 예산보다 높은 가격대에 거래되고 있다. 김씨는 이도저도 안 되면 아예 판교에 있는 처가에 살면서 돈을 모으는 방법도 생각하고 있다. 전세난을 견디다 못해 처가 ‘캥거루족’을 자처해야 할 상황에 놓인 셈이다.
서울 아파트 전세난이 본격적으로 빌라 전셋값까지 흔들어놓기 시작한 것은 지난 8월이다. 직장인 김현철(35)씨는 결혼을 앞두고 지난 7월 서울 강서구의 한 신축 아파트 전세 매물을 구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집을 구하는 과정에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처음에는 아파트 위주로 찾다가 예산이 빠듯해 연식이 오래된 아파트, 신축 빌라 등으로 선택의 폭을 넓혀야 했다. 매물이 많지 않아 선택의 폭은 크게 제한됐다. 특히 신혼 부부가 계약할 만한 중평형대 이상 매물이 없었다.
김씨는 발품을 팔다가 합리적인 가격의 신축 아파트 전세 매물을 구했다. 이 아파트에서 풀린 매물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운 좋게 매물을 구한 것이다. 김씨는 “조금만 더 늦었으면 계약이 힘들었을 것”이라고 회상했다. 실제로 김씨가 계약한 지난 7월을 기점으로 연립·다세대·단독·다가구 전세 매물이 급격히 줄었다. 다방에 따르면 8월 연립·다세대 거래량은 전달 거래량(7321건)의 반토막 수준인 3725건으로 줄었다.
그나마 김씨처럼 운이 좋지 못한 경우에는 준전세, 월세 매물 등으로 타협을 봐야하는 상황이다. 서울 관악구의 한 공인중개업자는 최근 전세 보증금 2억~3억원대 빌라를 구하는 세입자에게 마땅한 매물을 찾아주지 못했다. 아이 학업 문제로 전셋집이 급하다는 말에 결국 세입자에게 보증금 7000만원에 월세 60만원대 매물을 소개해줬지만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이 중개업자는 “아무리 다 들춰봐도 (그런 매물은) 없다. 아예 월세나 매매로 바꿔 구하면 모르겠지만, 전세 매물은 안 나올 거다”고 말했다.
이택현 정우진 기자 alle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