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넉 달 만에 의원발의 4120개… 마구잡이 입법 불안하다

입력 2020-10-13 04:03
21대 국회 개원 후 4개월여 만인 12일까지 발의된 법률안은 4331개다. 정부가 내놓은 입법안은 211개이고 나머지 4120개가 의원들이 발의한 것이다. 의원 1인당 13.7개 법안을 양산한 셈이다. 의원들이 의정의 핵심인 입법활동을 열심히 한 것 아니냐 할 게 아니다. 심한 말로 풀빵 찍어내듯 하면서 함량미달 법안이 속출하고 있다. 다른 의원들이 이미 발의한 것과 유사한 법안을 발의하거나 약간의 자구 수정만으로 수십 건의 일괄 조정 법률안을 발의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이 정도는 애교다.

위헌 소지가 있거나 중립성과 공정성 등 기본적인 법 원칙이 의심되는 법안도 속출하고 있다. 어촌 주민들의 자치단체인 어촌계에서 이미 자체적으로 어촌계장에게 활동수당을 지급하고 있는데도 수당이나 활동비를 주자는 법안, 노동계 출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근로기간 1개월만 돼도 퇴직금을 주자는 법안 등은 특정 집단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포퓰리즘 색채가 짙다. 법은 기본적으로 사람이나 조직의 행위를 제한하는 것이다. 국무조정실 규제정보 포털에 따르면 21대 국회 들어 의원들이 발의한 규제 신설·강화 법안은 567개에 이른다. 이들 중 상당수가 기업의 손발을 과도하게 묶는 법안이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지난달 국회 개원 3개월 사이에 기업에 부담이 되는 법안만 284건이 발의됐다며 국회에 신중한 논의를 요청하기도 했다.

의원 발의 법안이 얼마나 허술하게 만들어지는 지는 ‘법안 품앗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다. 의원들이 법안 내용은 보지도 않고 상부상조로 법안에 동의해준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정당 지도부가 법안 발의 실적 등 정량기준이나 시민단체 의견으로 의정활동을 평가하는 잘못된 관행을 고쳐야 한다. 정당이 소속 의원들을 자체 기준으로 평가하지 못하고, 중복되거나 함량 미달인 법안이 양산되는 데도 보고만 있는 건 스스로 정당 자격을 포기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