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신웅 (7) 소문난 문제수 “장로님, 은혜 많이 받았습니다”

입력 2020-10-14 03:04
김신웅 장로(왼쪽에서 두번째)가 1991년 경북 진보교회 장로 장립식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청송교도소에는 네 곳의 교정 시설이 있다. 그중 제2교도소는 전국 교도소에서 최고 문제수들만 차출해 수용하는 곳이다. 그곳에서 교도관으로 일하는 박길후 과장이 나를 찾아왔다. “장명한(가명)이라는 재소자가 있는데 장로님이 꼭 만나주셨으면 합니다.”

소문으로 분노 조절이 안 되는 문제수라는 것을 익히 알고 있던 나는 그와 만남을 꺼렸다. 그런데도 박 과장은 “그 사람이 장로님을 지목했으니 꼭 만나 달라”고 했다. 어쩔 수 없이 제2교도소로 갔다. ‘도대체 어떻게 생긴 사람이길래 교도관들도 두려워할까.’

상담실로 들어서자 한 젊은 청년이 7명의 교도관의 삼엄한 경계 속에 내 앞에 앉았다. 곱상한 외모와 달리 그는 머리와 목에 칼로 그은 끔찍한 흉터 자국을 내 앞에 들이대며 자신이 이런 사람이라는 듯 신고식을 했다.

나는 조용히 눈을 감고 기도했다. “하나님, 이런 사람한테 제가 무슨 말을 해야 할까요.” 그때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가진 모든 결점을 이야기하라.”

하나님이 지시하신 대로 나를 소개했다. “나는 교정 선교하는 진보교회 장로입니다. 부족하고 단점이 많은 사람입니다. 심각한 천식 환자여서 말을 많이 하면 숨이 차고 조금만 움직여도 피로가 쌓여서 힘든 날에는 누워서 지내야 합니다. 동물 분비물 알레르기를 갖고 있는데 동물병원도 경영하고 있죠. 연약하고 힘이 없어서 게으르고 나태하기까지 합니다.”

내가 가진 악습과 나약함에 관해 이야기했다. 나도 내가 그렇게 문제가 많은 사람인지 몰랐다. 내 이야기를 들은 명한이도 마음의 문이 열린 듯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줬다. 자기 자랑과 무용담, 조직의 보스들도 자기를 두려워한다는 이야기 등 상담은 한 시간 동안 계속됐다. 다음을 기약하며 일어서다가 그에게 말했다.

“내가 그래도 명색이 장로인데 오늘 하나님 이야기를 한 번도 못 했네요. 우리 기도하고 헤어집시다.”

우리 두 사람은 시멘트 바닥에 앉아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하나님, 이 어린 양이 하나님을 꼭 만나서 새롭게 변화되게 하여 주옵소서.”

상담실을 나와 교무실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데 교도관을 따라가던 명한이가 갑자기 뒤돌아서 뛰어왔다.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7명의 교도관도 덩달아 뛰기 시작했다. 내 앞으로 온 명한이는 정중하게 절을 했다.

“장로님, 은혜 많이 받았습니다.”

“그래요?”

그날 오후 박길후 과장이 찾아와 “명한이가 무슨 말을 하던가요”라고 물었다. 내가 “은혜 많이 받았다던데요”라고 말하자 박 과장은 정색했다. “장로님도 이제 교도소에 그만 오실 때가 됐네요. 교도소에 왔다 갔다 하시더니 이제 사기꾼이 다 되셨군요. 장로님, 어떻게 그런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하실 수 있습니까.”

그 말을 듣고 기분이 좋지 않았던 나는 이렇게 말했다.

“그럼, 내일 아침 교도소에 출근해서 확인해보면 될 거 아이가.”

정리=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