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어지는 코로나 블루, 난치성 우울증도 늘어난다

입력 2020-10-12 19:52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주부 최모(35)씨는 최근 남편과 함께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았다. 은행에 근무했던 그녀는 둘째 출산 후 가사를 전담하면서 육아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2년 전부터 가족 몰래 우울증 치료를 받아왔다.

저비용항공사(LCC)에서 일하는 그녀의 남편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한두 달씩 걸러 무급휴가를 받고 있다. 아르바이트에 뛰어든 남편을 보며 안쓰러운 마음이 드는 한편 일터로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자신의 처지 때문에 불안과 우울 증상은 더 심해졌다. 잠 못 이루는 날이 많아지고 식욕이 없어 체중이 눈에 띄게 줄자 남편과 아이들도 그녀의 우울증을 눈치챘다.

최씨는 기존 우울증 약이 효과가 없어 두 달 전부터 다른 항우울제로 바꿨음에도 증상에 변화를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다. 남편 역시 고용불안 때문에 스트레스가 심해지자 이번 달부터 의사 권고로 최씨와 함께 상담 치료를 시작했다.

코로나 장기화로 정신건강 위협

개인적 문제나 사회·경제적 요인 등으로 최씨 부부처럼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이 크게 늘고 있다. 지난해 주요 우울장애로 병원 진료를 받은 이들은 80만명에 육박했다. 우울증 환자 수는 최근 5년간 연평균 7%씩 증가하고 있다.


더구나 올해는 코로나19라는 예상치 못한 변수가 하나 더 생겼다. 코로나 장기화로 인한 우울감, 이른바 ‘코로나 블루’를 경험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올해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지난 4월까지 우울증 진료 환자가 벌써 50만명을 넘었다. 반년도 되지 않아 지난해 전체 환자 수에 근접한 것이다.

대한정신약물학회 이사장인 이상열 원광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12일 “우울증은 가족 사별이나 신체적 기능 상실, 질병 등으로 인한 상실감(loss)이 주 원인인데, 새로운 사회·경제적 상황에 대한 부적응과 불안도 한몫한다”면서 “계속되는 코로나19 사태로 일상생활이 무너져 국민들의 상실감이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20·30대 젊은 여성들의 코로나 블루가 심각하다는 신호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올해 이들 연령대의 극단적 선택 시도가 많았다는 통계가 있다. 가뜩이나 학업, 취업 등 사회 구조적 문제로 힘든데 코로나19 장기화로 스트레스가 더 커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런 상황에서 제대로 된 우울증 치료를 받는 비율은 높지 않다. 우울증은 항우울 약물 치료와 함께 정신심리 상담이 함께 따라줘야 하는데 ‘심리 방역’ 인프라가 취약하다.

더구나 여러 항우울제 사용에 따른 약물 내성의 증가로 ‘치료 저항성 우울증(난치성 우울증)’도 증가하는 추세다. 이는 최소 2가지 이상의 다른 항우울제를 각각 4~6주간 써 봤으나 적절한 반응이 나타나지 않고 증상이 나아지지 않는 경우를 일컫는다.

일반적으로 주요 우울장애를 겪고 있는 3명 가운데 1명이 여기에 해당된다. 국내 우울증 환자의 30~45% 정도(2019년 환자 기준 23만~35만명)가 치료 저항성일 것으로 정신의학계는 보고 있다. 이 교수는 “우울 증상과 함께 불안장애,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TSD), 알코올 중독, 성격장애 같은 공존 질환이 있을 시 특히 치료가 잘 안되는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에 따르면 처음 항우울제 치료 실패 후 재치료를 받을수록 2차 31%, 3차 14%, 4차 13% 순으로 회복률이 크게 떨어졌다. 기존 약물에 적절하게 반응하지 않는 우울증 환자는 좌절과 절망, 공포 같은 부정적 감정상태를 경험하게 된다. 이들은 치료 순응도가 높은 환자보다 극단적 선택 위험이 7배, 일반인 보다는 약 20배 높다.

치료 저항성 우울증 환자는 일반 우울증 환자보다 심장질환, 당뇨병 등 동반 질환 증가와도 연관있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뇌 자기공명영상(MRI) 촬영 결과 우울증 치료가 안되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감정을 담당하는 뇌 부위(해마)의 퇴화 속도도 빨라진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우울증이 단순한 ‘마음의 병’만은 아닌 것이다.

학계의 우울증 치료 최신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항우울제 치료를 시작한 후 초기에 치료 반응이 없으면 신속하게 치료법을 바꾸는 것이 기존 약물 치료를 지속하는 것보다 효과적이다. 의료진 판단에 따라 치료 초기에 증상이 개선되지 않을 시 치료법을 수정해야 한다는 얘기다.

난치성 우울증, 새 치료법 주목

이런 가운데 치료 저항성 우울증을 기존 먹는 약이 아닌, 코에 뿌려 치료하는 ‘비강 분무형 신개념 약(스프라바토)’이 국내 승인을 받아 다음 달 출시를 앞두고 있다. 이는 치료 저항성 우울증 분야에서는 최초, 주요 우울장애 분야에선 30년 만에 등장한 새로운 기전의 치료제다. 18~65세 치료 저항성 우울증 환자 1700명을 대상으로 먹는 항우울제와 병용한 임상시험을 통해 드라마틱한 증상 개선과 재발 가능성 감소 효과가 입증됐다. ‘에스케타민’이란 주 성분이 우울증 관련 뇌신경전달물질(글루타메이트)에 작용해 무기력한 기분을 올려준다. 기존 먹는 항우울제의 경우 효과가 나타나기까지 4~6주 걸리지만 이 치료제는 4~24시간 안에 반응을 보인다. 다만 일부 부작용과 오남용 방지를 위해 등록된 의료기관에서 전문의 관찰 아래 투여해야 하며 최소 2시간 환자를 모니터링해야 한다. 전덕인 대한우울조울병학회 이사장은 “수십년간 신약이 없었던 우울증 분야에서 새로운 치료 옵션이 될 수 있어 희소식”이라고 전했다.

아울러 국내 의료진이 약물이 아닌 ‘초음파 뇌수술’로 난치성 우울증 치료에 성공해 관심을 끌고 있다. 한양의대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장진구 교수팀은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정신과 및 신경외과와 함께 여러 치료 방법에도 효과가 없던 우울증 환자 4명에게 ‘고집적 초음파 뇌수술(MRgFUS)’을 시행했고 1년 넘게 큰 합병증 없이 우울 증상이 개선됐다는 연구논문을 최근 국제학술지(Bipolar disorders)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뇌에서 우울증을 일으키는 부위(내포전각)에 초음파 열을 집중해 우울·강박과 관련된 뇌 회로를 절제했다. 12개월 후 4명의 객관적 우울증 평가(HAM-D) 점수는 83%, 주관적 우울증 평가(BDI) 점수는 61.2% 떨어져 증상이 호전됐다. 장진구 교수는 “그간 개두술(뇌 절개)을 이용한 난치성 우울증 치료 환자의 52%에서 섬망 등 일시적 부작용이 나타났고 21%에서 뇌출혈, 요실금, 두통 등 영구 부작용이 있었다는 보고가 있었다”면서 “초음파 뇌수술은 두개골을 열지 않기 때문에 출혈과 감염 위험이 없다. 지금까지 알려진 장·단기 부작용이 없어 앞으로 활용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