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인구 110만 도시에 고층 화재 진압 사다리차가 없다니

입력 2020-10-12 04:03
지난 8일 울산 남구 주상복합건물에서 발생한 화재는 ‘33층 불더미의 기적’이라고 할 만했다. 33층 건물에서 심야에 불이 났지만, 사망자도 중상자도 없이 모든 주민이 구조됐다. 긴박한 상황에서도 매뉴얼에 따라 행동한 주민들의 시민의식과 소방 당국의 신속한 대응이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건물 외벽에 사용된 가연성 외장재가 불쏘시개 역할을 하는 고질적 문제가 또 드러났다. 자칫했으면 이번 화재도 초대형 재앙이 될 뻔했다.

무엇보다 초고층 건물 화재에 대한 소방 당국의 대비에 큰 허점이 있다는 게 드러났다. 울산광역시 의 인구가 114만명인데, 최대 23층까지 화재를 진압할 수 있는 70m 고가사다리차가 1대도 없었다. 이 때문에 고층 화재 진압용 사다리차가 부산에서 출발해 6시간 후에 울산 화재 현장에 도착했다고 한다. 처음에 불기둥이 치솟는데도 바람 때문에 소방헬기도 띄울 수 없었다.

박완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소방청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전국에 일반사다리차는 461대가 있지만 70m 고가사다리차는 10대뿐이다. 서울과 경기도·인천이 각각 2대를 보유하고 있고 부산과 대전·세종·제주에 1대씩이 있다. 반면 올해 1월 기준 전국 30층 이상 고층건물은 4692동에 이른다. 2016년 말 3266동서 3년여 만에 1000동 이상 늘었다. 전체 30층 이상 건물 가운데 아파트가 3885동으로 83%를 차지한다. ‘초고층 시대’가 현실이 됐는데 소방 당국의 인프라는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 서울 등 대도시의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주거용이든 상업용이든 초고층화는 더욱 심해질 것이다. 이번 화재를 계기로 초고층 건물 화재 대비책을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 물론 70m 고가사다리차라도 갈수록 높아지는 건물을 고려할 때 화재 대응에 여전히 한계가 있다. 건축자재와 소방시설 등 건축물 내의 화재 예방 환경도 소홀히 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