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 한반도 평화의 전제조건은

입력 2020-10-12 04:03

분단국가인 대한민국에서 평화적 통일의 중요성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으며, 이를 위해 남북한의 관계 개선을 통한 긴장의 완화 및 평화체제의 확립이 필요하다는 점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문재인정부가 집권 초기의 판문점선언과 북·미 정상회담의 성과 이후 대북 관계에서 잇단 악재가 발생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탄력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헌법 제4조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의 원칙을 명시하고 있다. 이에 근거해 남북한 기본합의서 채택,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 등이 이뤄졌고, 이후로도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등 남북한의 교류와 협력에 관한 다양한 시도가 계속되었다. 하지만 그동안에도 북핵 개발,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등으로 인해 남북 관계가 경색된 경우가 많았다.

헌법재판소도 판례를 통해 북한은 평화통일을 위한 동반자임과 더불어 대남 무력적화통일을 획책하는 적대적 불법집단의 성격을 동시에 갖고 있음을 인정한 바 있다. 그 때문에 오래전부터 대한민국의 대북정책은 평화통일을 지향하되 북한의 위협이 상존한다는 점을 의식하면서 남북 교류·협력의 강화와 국가보안법 등에 의한 경계를 동시에 강조하는 강온양면책이 주류였다.

그런데 문재인정부에서는 한 번도 대북강경책을 전면에 내세운 바 없었다. 북핵 문제가 심각하게 부각돼 유엔의 대북 제재가 강화된 시기에도 오히려 국제사회에서 대북 제재 완화를 위해 노력하는 등 온건책을 계속 고집했다. 더욱이 최근에는 북한으로 표류했던 공무원이 북한군에 의해 사살되고 시신조차 훼손되는 상황에서 문 대통령이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그리고 보름 뒤에 다시 종전선언을 주장한 것 때문에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 종전선언으로 정전체제를 종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원론적 요청에야 누구나 동의할 수 있지만 과연 이 시점에 종전선언이 그렇게 급하고 중요할까. 더욱이 과거 북한과의 교류·협력을 위한 정부의 노력이 계속 좌절했던 것도 무시하고 북한에 대해 무조건적인 신뢰를 보내는 것이 옳은가.

1991년 남북한이 유엔에 동시 가입하고 남북기본합의서에 합의했을 때, 그리고 2000년 6·15남북공동선언이 채택되었을 때, 우리는 통일에 성큼 다가선 것처럼 느꼈다. 그러나 북한이 은밀하게 핵개발을 지속한 것이 문제되면서 남북 관계가 급속히 경색됐다. 대북 경수로 지원 등은 완전한 헛발질로 드러났고, 북한은 핵보유국을 자처하고 나섰다. 금강산 관광객이 북한군의 총격에 사망하면서 금강산 관광이 중단됐고, 개성공단 역시 북한의 미사일 발사시험과 관련해 폐쇄됐다.

과거는 덮어두더라도 최근 서해에서 표류된 공무원에 대한 북한의 태도는 어떤가. 만일 동일한 방식으로 우리가 북한 주민을 대했다면, 혹은 일본에서 우리 주민을 그렇게 대했다면 어땠을까. 지난해 11월 탈북자를 북한에 강제송환했던 것과는 또 어떻게 비교될 수 있을까. 정부 주장처럼 월북이더라도 북한은 그를 강제송환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10월 10일 노동당 창건일에 김정은이 말했던 것처럼 그들은 군사력을 전쟁억지력으로 표현하면서 핵무기를 포기할 의사가 없음을 시사한다. 그동안 비핵화 협상이 거짓이었음을 인정한 것이고, 그들이 말하는 평화는 무장평화인 것이다. 북한은 평화를 구걸하지 않는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이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가. 한반도 비핵화를 간간이 언급하지만 별로 절실함이 없고, 북한에 굽히고 양보함으로써 평화를 얻고자 한다. 과연 그것이 진정한 평화가 될 수 있을까. 그동안 북한의 약속이 믿을 수 없는 것으로 드러난 경우가 수없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한반도 평화는 북한 정권의 약속에 의해 담보될 수 없다. 한편으로는 상호 신뢰의 증진을 위한 노력도 필요할 것이지만, ‘송양지인(宋襄之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진정 중요한 것은 강력한 전쟁억지력을 통해 평화를 확보하는 것이다. 북한의 핵개발이 그런 취지라면 우리 정부는 북핵의 위협하에 놓인 국민들을 위해 도대체 무얼 하고 있는가.

장영수 고려대법학전문대학원 헌법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