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인권은 모든 사람이 존중해야 하는 최고의 가치다. 한국 헌법 10조도 모든 인간의 존엄과 가치, 행복 추구권을 선언하고 국가는 개인의 불가침적 기본인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선언하고 있다. 그러나 개인이 국가의 보호를 받고 있고 국가안보가 훼손되면 모든 국민의 인권을 지키지 못하므로 자연히 제약이 따른다.
특히 나의 인권과 자유를 위해 타인의 인권과 자유를 해치면 국가가 이를 제한하게 된다. 북한 정권을 비방하는 대북 전단 살포가 자동적으로 북한의 보복을 초래해 접경지역 주민들이 생명과 재산의 피해를 받고, 남북관계가 파괴돼 모든 국민이 불안을 느끼므로 제한하려는 움직임이 있는 것이 한 사례다.
다른 사례도 인권이 절대 권리는 아님을 우리도 인정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조성길 대사대리의 부인이 딸을 보러 월북을 희망한다는데 인권 기준으로 보면 허용돼야 하지만 현 한국법상 불가능하다. 2016년 4월 중국 북한식당 집단 탈북 종업원 중 일부의 귀향 의사가 나돌았지만, 법 문제와 함께 한국 체류 희망자들의 북한 가족들이 보복을 당할 염려가 있으므로 허용되지 않았다. 더 엄중한 사례도 있다. 2013년 9월 임진강 월북 민간인을 우리 초병이 사살했는데, 인권 차원에서는 형사 처벌 대상이지만 오히려 모범근무로 칭찬받았다고 한다. 인권에 절대 가치를 부여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북한군의 영해 내 우리 공무원 사살 사건을 다시 살펴보면 책임 소재가 분산된다. 물론 귀순 의사를 밝혔다는 비무장 민간인을 사살한 것은 북한 정권의 비인도적 야만성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그런데 김정은 정권이 그간 22명의 월북자를 송환했고, 북한을 찾은 사람을 사살한 것은 처음이다. 그 이유는 전염성 강한 코로나와 북한의 열악한 의료 수준에 있다. 북한 정권이 단 한 명의 비루스 환자도 없다고 자부하고 있는 배경에는 한 명의 환자라도 외부로부터 들어오면 많은 국민이 몰살된다는 강력한 두려움이 있는 것이다. 그 때문에 엄혹한 대북 제재로 경제가 어려운데도 북·중 교역도 중단하고, 8월 사회안전성이 국경에 접근하는 모든 사람과 동물을 사살하라는 포고문을 내렸다. 한 개인의 목숨보다 체제와 전 주민 수호가 더 중요하다는 집단주의적 사회주의 사고방식에 따른 것이다. 김정은은 포고령이 북한의 비인도적인 야만성을 노출한 부작용을 뒤늦게 인지하고 최고지도자로서 대단히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특히 현재 남북 간 호혜적 경협이 추진되고 있었으면 북한군이 감히 우리 국민을 사살하지 못했을 것이다. 또 이 문제를 국제공론화할 경우 ‘누워서 침 뱉기’가 될 것이다. 임진강 월북자 사살이 공론화돼 국가보안법과 남북 대결 상황에서 우리 역시 인권을 경시한다고 국제사회의 비난 대상이 될 것이다.
북한은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들의 야만적 비인간성을 또다시 확인시켜주지는 않을 것이다. 어떤 억울함도 없도록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최선이지만 현실적 한계가 보인다. 따라서 현실적인 최선책은 시신 수습과 진상규명 노력을 지속하면서 남북 간 의료방역 협력을 진흥하고 남북 대결 구도를 완화해 이런 사건의 재발을 막는 것이다.
북한을 궁지로 몰아도 얻을 게 없을 때는 이런 만행을 반복하지 않도록 다짐받으면서 의료협력을 증진하고 남북관계를 개선하며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재개해 북한 스스로 이런 만행을 자제하도록 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지혜로울 것이다. 남북 대결을 더 심화시키면 이런 비인도적인 만행의 재발을 오히려 막기 어려울 것이다. 대통령의 종전선언 촉구는 이런 면에서 시의적절한 것이다.
홍현익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