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사니] 기로에 선 ‘트럼프식 통치술’

입력 2020-10-12 04:05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년 더 집권하면 한반도 정세에 결정적인 전환점이 찾아올 것이라고들 말한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후보 시절까지 포함해 4년 남짓 전 세계 정치에 끼친 해악을 돌이켜보면 도무지 그를 좋게만 봐줄 수가 없다. 여론조사 수치대로 트럼프 대통령에게 승산이 희박하다면 차라리 압도적 표차로 패했으면 싶다. 그래서 세계를 도탄에 빠뜨렸던 트럼프식 통치가 미국 유권자 손으로 종식됐으면 한다.

그동안 세계 각국에서 제2, 제3의 트럼프를 표방하고 나온 정치인은 이루 세기조차 힘들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트럼프식 막말 전략으로 집권을 이뤄냈다. 친(親) 트럼프 성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던 프랑스 극우 정치인 마린 르펜은 2017년 대선에서 결선에 진출하는 대이변을 만들었다.

트럼프 대통령과 유사한 권위주의 성향의 포퓰리스트 정치인이 각지에서 연일 승승장구하면서 이들보다 앞서 집권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도 덩달아 ‘스트롱맨’이라며 과분한 주목을 받기도 했다.

막말로 분열과 갈등을 일으켜 정치적 이익을 챙기는 트럼프 대통령의 기법은 사실 전혀 새롭지 않다. 나치 독일 선전장관 요제프 괴벨스의 어록에서도 그 계보를 추적할 수 있다. “논변은 이성보다 감정과 본능에 호소해야 한다.” “거짓도 천 번 말하면 진실이 된다.” 트럼프 대통령의 입버릇 ‘페이크 뉴스(가짜뉴스)’조차 나치가 비판적 언론을 유대인 또는 공산당이라고 비난하며 썼던 ‘뤼겐프레세(거짓말쟁이 언론)’와 똑 닮았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눈부신 성공은 그의 문제적 통치술을 마치 최첨단 정치 전략인 양 미화하는 착시 효과를 낳았다. 과거에는 정치인의 막말이 그의 도덕적 결함과 몰상식을 폭로하는 실언으로 여겨졌었다. 지금은 본인의 존재감을 부각하고 골수 지지층을 결집하는 전략적 행동처럼 받아들여 지고 있다. 세계화로 인한 경제적 양극화, 기성 정치에 대한 혐오 등 밑바닥 민심을 자극했다는 그럴듯한 설명도 따라붙었다.

이런 흐름은 한국 정치와도 무관치 않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한국의 트럼프’로 지목된 정치인이 적잖이 있었음을 떠올려보자. 이들 중에서 본인을 트럼프 대통령에 비유하는 시각에 거부감을 드러냈던 사람은 없었던 것 같다. 한국의 양대 기성 정당이 내세워온 이념은 트럼피즘(트럼프주의)과 쉽게 섞이기 힘든데도 말이다. 도리어 스스로를 ‘한국의 트럼프’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트럼프 대통령의 기법을 적극적으로 모방하는 움직임도 보인다.

한국 유권자들의 성향도 갈수록 과격해지는 느낌이다. 요즘 인터넷 정치 게시물은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과격함과 편협함, 노골적인 혐오 정서가 두드러진다. 4·15 총선 당시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지도부가 차명진 후보의 ‘세월호 텐트’ 막말을 두고 우왕좌왕했던 것도 ‘트럼프 효과’에 따른 착시효과 탓이었던 듯하다. 선거의 전반적 판세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사안임에도 과격 지지층의 눈치를 보다 발 빠른 대응을 하지 못했다는 얘기다.

연일 승승장구하며 새로운 정치 패러다임을 만드는 듯했던 트럼프 대통령은 결국 코로나19 대응 실패 논란에 부딪히며 민낯을 드러냈다. 트럼프 대통령을 대놓고 따라 했던 브라질의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코로나19 대유행 상황에서도 “사람은 어차피 다 죽는다”는 등 막말 본색을 버리지 못하다 역풍을 맞았다. 코로나19가 인류에 큰 고통을 주고는 있지만 트럼프식 포퓰리스트 정치인의 밑바닥을 드러내 준 것은 나름대로 긍정적인 효과라고 해야 할지. 정치 지도자의 기본 자질은 막말을 얼마나 잘하느냐가 아니라 실질적인 국정 운영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 여부로 평가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준 셈이다.

조성은 온라인뉴스부 기자 jse130801@kmib.co.kr